너무 슬프고 화가 나고 가슴이 아픈 짧은 글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 어슐러 르 귄은 여러 군데에서 많이 들었는데 직접 활자로 접하기는 처음이다. 그의 책은 도서관에도 많지 않고, 주변에 가지고 있는 사람도 없어 애써 찾아 읽어야만 했는데, 한국 독자들에게 익숙한 작가인데도 이렇게 책이 없어 놀랍기도 했다. ‘바람의 열두 방향’은 어슐러 르 귄의 글 열일곱 편이 수록된 단편집이다. 그 중 달랑 6장 분량의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토론 주제로 많이 나오는 글이다.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유토피아를 떠올려보자. 오멜리아에는 주식도 회사도 군대도 없다고 한다. 오멜리아에 사는 사람들은 행복하고 즐거울 뿐 아니라 높은 도덕 수준이 존재해 그 행복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아는 그런 숭고한 사회이다. 오멜리아는 무거운 법률과 지엄한 시스템이 없어도 사람들의 선의가 세상을 굴러가게끔 만들며 모두가 감사할 줄도 안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오멜리아에는 이러한 행복과 즐거움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고한 한 아이가 끔찍한 환경에서 고통을 받아야 한다. 그런 규제가 있었던 구체적 시작 시기나 누가 그렇게 했는지도 나오지 않는다. 오멜리아 시민들은 특정한 나이가 되면 그 아이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자신의 행복이 누구의 희생으로부터 왔는지에 대해 배우고 기성세대로부터 경고받는다. 그 아이가 아무리 측은하더라도 결코 도움의 손길을 주어서는 안된다. 그 아이에게 친절한 말을 하거나 음료수 한 잔을 주어도 오멜리아 시민들 전체의 행복한 삶이 즉시 사라진다는 계약 조건이 붙어 있다. 개인의 행복만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행복이 전부 그 아이의 불행에 달려있었다. 오멜라스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유토피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대부분은 죄책감이나 분노를 잠재우고 겉으로 보기에 평온하고 행복하게 일상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오멜라스에는 소수지만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완벽하고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떠나고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독자에게 궁금증을 던지며 단편은 끝이 난다.
나는 내가 유토피아라고 여기는 사회를 그려보았다. 특히 경제 활동을 끝내고 은퇴를 눈앞에 두게 되자 젊은 시절 생각하던 유토피아와는 많이 달라졌다. 우선 노동을 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삶의 영위가 가능한 사회이어야 하고, 돈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 타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지 않으며 스스로 주체성 있게 살아가는 사회가 유토피아라고 생각한다. 오고가는 말에 악의가 없고 순순히 사람을 믿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희생으로 내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가정을 해보았다. 내 주변의 누군가가 나를 위해 대신 경제 활동을 하고 나는 여기저기 여행이나 다니며 일상이 휴가인 삶을 잠시 꿈꾸어본다. 아마 단기간은 무척 행복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겠지. 한달 두달 시일이 지나면서 지겨움에 이리저리 잡생각을 하다 결국 예전 생활로 다시 돌아갈 사람이다. 게다가 나는 스스로 엄청 행복하게 태어나는 확률을 갖지 못했다는 인식이 있어 내가 지하실의 그 아이로 뽑힐 것만 같아 두렵다. 오멜리아 시민의 한 사람으로도 태어난다면 그것 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해서 그 아이를 위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부끄러운 어른이 될 것 같은 자신이 싫어졌다. 다른 이들에게 아무리 나를 포장하고 미화해 보이려 애써도 속마음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들킬까봐 두려움에 떨어 아이를 외면하는 못난 어른일 것 같다.
칸트는 사람은 언제나 목적이어야지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제러미 벤담은 공리를 말하며 다수의 행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우리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둘 중 누구의 의견을 따를 것인가 선택한다면 힘든 삶이라도 칸트를 따르겠다. 행복이나 유용성을 버리는 게 아니라 내 선택에 스스로 부끄러움이 없는지, 도덕적으로 큰 잘못이 없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결론을 내리는 나약하지만 휘어지지만 부끄럽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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