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회에서 난양이(향산)까지 - 3

김희찬 | 기사입력 2024/03/05 [11:02]

수회에서 난양이(향산)까지 - 3

김희찬 | 입력 : 2024/03/05 [11:02]

 

▲ 칼바위 전망대에서 바라본 팔봉 마을  © 충주신문

 

칼바위 출렁다리에 올라봤다. 또는 전망대에도 올라봤다. 전망대 오르는 길은 월악산 영봉에 오르는 만큼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강 건너 팔봉 마을을 한눈에 보기에는 전망대가 제격이다. 거기서 바라보는 팔봉 마을은 안동 하회 마을이나 영주 무섬 마을이 부럽잖다. 다만, 고즈넉한 옛집이 없고, 마을 앞 백사장에 텐트촌이 만들어진 풍경이 다르다. 수주(水周)라는 마을이 있지만, 오히려 팔봉 마을을 휘감아 두른 물줄기가 더 수주답다.

 

▲ 팔봉서원  © 충주신문

 

황정욱이 초은정에서 보았던 풍경처럼, 팔봉서원이 마을 정중앙에 자리잡았다. 길을 따라 길게 늘어선 팔봉서원을 건너보면서 잠시 시간 여행자를 꿈꾼다. 어쩌면 팔봉서원이 유일한 기와집이었을 때가 있었을 것이다. 둥글둥글 굴앙선을 그리며 들어선 초가에서 저녁 밥 짓는 연기가 집집마다 피어올라 퍼지고, 수주 쪽으로 넘어가는 해가 비추면 골짜기에는 연기와 노을이 불긋푸릇 잠겼을 것이다. 황정욱이 보았던 팔봉 마을 풍경은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계속되었을 것이다. 지금 팔봉 마을은 유원지로 변하고 있다.

 

▲ 칼바위  © 충주신문

 

▲ 청뜰녘  © 충주신문

▲ 토계초등학교(폐교)  © 충주신문


칼바위에서 내려와 석문동천이 흐르던 청뜰녘을 따라 난 길을 걸었다. 지난 가을에 걸을 때는 누렇게 익은 벼가 논에 그득했지만, 겨울을 지난 청뜰녘은 황량하다. 청뜰녘을 반가름하는 논길이 끝나고 팔봉다리로 걸으면 폐교된 토계초등학교가 파란 지붕을 얹고 아담한 자태를 드러낸다. 거기 어디 쯤에 이자(李耔, 1480~1533) 선생이 살았을 것이다. 그를 찾아 용탄(龍灘)에서 배를 타고 달천을 거슬러 오른 이연경(李延慶, 1484~1548)과의 만남도 여기 어디 쯤에서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계옹(溪翁)’, ‘탄수(灘叟)’로 불렀다. 그래서 처음 팔봉서원을 세웠을 때 계탄서원(溪灘書院)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팔봉서원은 1672년(현종 13)에 사액(賜額)된 이름이다. 계탄서원을 세운 내력은 이연경의 맏사위인 노수신(盧守愼, 1515~1590)이 지은 <계탄서원기(溪灘書院記)>(노수신, 『소재집』 권7)를 보면 자세하게 알 수 있다.

 

계탄서원에 들렀던 인사는 많다. 그리고 그들은 시를 지어 남겼다. 여러 명이 지은 시 중에 정묘호란이 일어난 직후인 1627년에 4개월 남짓 충주목사를 지낸 이식(李植, 1584~1647)의 시를 충주 읍지류에는 팔봉서원 제영시로 기록하고 있다.

 

自是桃源境 원래 무릉도원 같은 이곳에,

曾開杏樹壇 일찍이 열린 행수의 교단(敎壇).

洞深寒漱攪 썰렁해라 겨울 기운은 깊은 골을 휘젓고,

崖峭雪巑岏 아슬아슬 깎아지른 벼랑 위에는 하얀 눈.

絃誦欽風遠 글 읽는 소리 멀리 풍교(風敎)를 흠모하고,

宮墻占地寬 당우(堂宇)는 드문드문 널찍하게 자리했네.

干戈滿天地 천지간에 온통 병장기(兵仗器) 소리라서,

局促對儒冠 창황한 심정으로 유관을 대하노라

一宿溪灘院 계탄서원에 하룻밤 묵고 가려니,

 

偏多感慨情 가슴속 깊은 회포 유달리 느껴지네.

仙區暫投迹 신선 사는 이 구역 잠깐 발길 옮긴 것은,

賢躅久留聲 오랜 명성 간직한 현인의 자취 찾음이라.

氷合川逾響 얼음장 밑의 물소리 더욱 크게 울리고,

山寒月轉淸 차가운 산 위의 달 한층 맑게 보이누나.

依依單閼事 아 어찌 잊으리 단알(고갑자 卯, 1627)의 일,

塵世幾紛更 풍진 세상 얼마나 더 난리를 겪으려나.

- 이식, <宿溪灘書院, 二首>, 『택당집』 권4 및 『충청도읍지』 충주목 제영조

 

이식의 할아버지는 이행(李荇, 1478~1534)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 책임을 맡았던 사람이다. 이행 역시 1504년에 있었던 갑자사화 때 사간원 헌납를 거쳐 홍문관 응교로 있으면서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하다가 충주로 유배되어 6개월 가량 살았다. 충주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글을 모아 <적거록(謫居錄)>으로 제목을 단 것이 『용재집(容齋集)』에 수록되어 있다. 이식 역시 충주목사로 부임했지만, 유효립(柳孝立, 1579~1628)의 난에 가담한 충주 사람이 많아서 책임을 물어 파직됐다. 그리고 충주는 충원현으로 강등되었다. 바로 그 겨울에 계탄서원에 들렀던 이식은 하룻밤을 자면서 시를 지었고, 그것을 팔봉서원 제영시로 기억해 왔다.

 

팔봉서원은 이자, 이연경, 김세필(金世弼, 1473~1533) 등 충주를 중심으로 은거했던 기묘명현을 기렸고, 뒤에 이연경의 맏사위인 노수신을 추가로 모셨던 곳이다. 1582년에 서원 건립을 시작하여 1586년에 낙성되었고, 1672년에 사액되었던 곳이다. 1870년에 시행된 서원철폐령에 의해 폐원되었는데, 1998년에 후손들이 재건하였다. 2003년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129호로 지정되었다.

 

과거 충주에는 운곡서원(雲谷書院, 음성군 삼성면 용성리), 팔봉서원, 누암서원(樓巖書院, 중앙탑면 누암리), 충렬서원(忠烈書院, 충주시 단월동) 등 네 곳의 사액 서원이 있었다. 충렬서원은 단월의 충렬사로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된 곳이다. 그러나 충렬서원은 1970년대의 정화사업 과정에서 충렬사 앞에 있던 강당을 서쪽으로 옮겨 돌려놓음으로써 사람들은 서원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한다. 팔봉서원은 복원하였다고는 하지만, 온전한 복원이 아닌 관계로 현재 충주시에서는 서원다운 서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나마 팔봉서원을 통해 서원의 느낌을 읽을 수 있고, 2020년부터 문화재청 지원사업으로 중심고을연구원에서 팔봉서원과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매년 진행하고 있다. 팔봉 마을의 중심에는 팔봉서원이 있지만, 칼바위 앞의 너른 백사장을 중심으로 유원지, 관광지로 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9년에 유네스코 제43차 회의에서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서원에 대한 재조명과 관심이 증폭되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서원,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인데, 충북에는 한 곳도 없다. 다른 도에 가보면 서원을 개방하여 찾는 이들이 편히 구경할 수 있다. 향교도 마찬가지인데, 충북의 여러 곳을 다니며 찾았던 서원이나 향교의 경우 문을 굳게 닫아 놓은 경우가 많았었다. 팔봉서원의 경우에도 문이 닫혀 있어서 안에 들어가 구경하기는 쉽지 않다.

팔봉서원에서 강 건너 칼바위를 바라보면 멋있다. 1963년에 절반을 폭파하기 전의 모습은 어땠을까?

 

劍巖環峭兔溪深 검암은 빙 둘러 가파르고 토계는 하 깊으니

二老先生此會心 두 노선생께서 이것이 마음에 들었던 걸세

故宅荒涼悲自昔 옛집들은 황량하여 예전부터 슬퍼했거니와

新堂輪奐慶如今 새 사당은 화려하여 지금 와서 경하롭구려

絃歌淸徹龍吟閟 현가는 용음의 적막한 곳에 맑게 통창하고

俎豆明依鳳舞陰 조두는 봉무의 그늘 아래 밝게 의지하였네

更屬使君經紀始 다시 목사에게 촉탁해 관리를 시작하게 하니

不勝歸夢惹覊襟 돌아갈 꿈이 나그네 옷깃 이끎을 못 감당켔네

- 노수신, 「次黃景文劍巖韻」, 『穌齋集』 권6.

 

황정욱의 초은정 시에 차운하여 팔봉서원에서 칼바위를 바라보며 지은 노수신의 심정은, 감격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자의 행장(行狀)을 지은 노수신은 1519년 기묘사화 이후 음성의 음애동(陰崖洞)에 은거했고, 다시 기축(己丑, 1529)년에 토계(兔溪)로 이사해 1533년에 생을 마친 것으로 기록하였다. 그리고 장인인 이연경이 토계에 살고 있는 이자를 종종 찾아와 교유했던 정황도 그리고 있다. 그 시기에 노수신은 이연경을 스승으로 모시고 공부하던 때였고, 을사사화(1545)에 연루되어 20년 가까이 유배 생활을 했다. 유배에서 풀려나 정계에 복귀하여 1585년에 영의정에 오른 노수신은 1586년에 계탄서원의 낙성 소식을 전해온 조카 강복성(康復誠, 1550~1634)의 청에 흔쾌히 <계탄서원기>를 지었다. 그리고 찾은 계탄서원에서 낙성식과 첫 배향을 마치고 두 노선생 이자와 이연경을 그리며 칼바위를 바라보며 시를 지었다. 팔봉서원 앞에서 칼바위를 바라보며 노수신의 감회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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