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와 헤어질 때 특히 친한 사람들과 헤어질 때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잘 가!’, ‘또 만나자’라고 인사를 한다. 그 인사는 잠시 헤어짐의 경우에는 가볍게‘잘 가!’라든가 ‘또 만나자. 가 되지만 먼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헤어짐의 인사는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추며 눈물까지 흘리며 헤어짐을 아쉬워한다. 심지어 요즈음 젊은 연인들 사이에서는‘내 꿈 꿔!’라는 인사말까지 등장해서 잠시의 헤어짐조차 못잊어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또 만나면 안 돼’, ‘다시는 만나지 말자’라고 인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꽤 오래전 모 텔레비전 방송 중 「아들의 집」이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애환을 그린 프로그램이 있었다. 순간적인 실수 또는 가정과 학교로부터의 소홀한 교육과 지도 때문에 탈선을 했던 청소년들이 재생의 길을 열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 프로였다. 가정에서 버림받고 학교에서 쫓겨나고 사회로부터 격리된 저들의 삶은 몇몇 뜻있는 사람들에 의해 어렵게 재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사실 그들에게 처음부터 탈선을 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작은 실수가 모여서, 순간적인 충동을 자제하지 못해서, 주어진 환경에 쫓기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사회의 그늘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쫓겨나기 전의 가정으로, 학교로 그리고 이웃과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 그들의 가장 절실한 바램이다. 「아들의 집」에서 이들을 맡아 지도하는 교사들은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이면 이들을 가정과 학교로 되돌려 보내서 원래의 모습을 찾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도록 애를 쓰고 있었지만, 가정은 가정대로 학교는 학교대로 저들의 귀환을 별로 반기지 않는 듯했다. 그것은 그 나름의 이유가 있기도 했다. 자기 몸으로 난 자식을 버릴 때야 오죽했을까? 또 저들을 학교라는 울타리 밖으로 내보낸 교육책임자들의 마음도 편치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목수가 한 번 휘어진 못을 버리지 않듯 우리 역시 비뚤어진 저들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저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그 자리로 돌아가는 청소년들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그래도 언젠가는 자신들도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친척집에서조차 받아들이길 꺼려하는 것을 본 어느 아이는 그런 부모와 친척을 원망하기 앞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또 자신이 처한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래서 자기 혼자서라도 독립을 하여 정상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래서 저들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들에게 ‘다시는 만나지 말자!’라는 이별의 인사를 한다고 말했다. 시설을 떠나는 동료(?)들에게‘다시는 절대 이곳에 오면 안 돼!’,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말자.’라며 손을 흔들어 주는 남아 있는 아이들. 그들은 자신들에게도 언젠가 이와 같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날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이 사회의 여러 곳에서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만나서는 안 되는 그런 입장과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그들은 불우아동 보호시설에서, 교도소에서, 이 사회의 그늘진 구석에서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곳에서 만나지 않을 날을 기다리며 회한의 세월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사창가에서 일하는 거리의 여자들을 취재하는 프로그램에서 한 젊은 여성의 하던 말이 지금도 마음을 뭉클하게 하고 있다.‘제가 만약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면 결코 이와 같은 자리에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은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에요, 이런 곳에 오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더 행복할겁니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홈피에 게재돼 있는 모든 이미지를 무단도용, 사용이 발각되는 즉시 민형사상 책임을 받게 됩니다. ※ 외부 기고는 충주신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관련기사목록
|
기고/독자투고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