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

남상희 | 기사입력 2022/01/13 [10:54]

호칭

남상희 | 입력 : 2022/01/13 [10:54]

▲ 남상희 시인     ©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코끝이 시린 것은 당연하고 옷 속까지 겨울바람이 파고들어 와 내 체온을 저울질해댄다. 감기라도 들면 큰일이다. 눈만 빼꼼하게 내놓고 며칠 모아둔 쓰레기를 버리려고 밖으로 나왔다. 출퇴근하던 직장도 없으니 늘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산다. 직장을 다닐 땐 가정주부가 집에서 한가롭게 여가생활도 하면서 시간에 구애 안 받고 사는 것 같아 무척이나 부럽고 부러웠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이젠 부러움의 가정주부가 되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부러움의 가정주부가 그리 좋은 것만이 아닌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날마다 규칙적인 생활이였는데 어느 날부터 조금씩 희석되더니 나태함과 무력함이 내 온몸을 휩싸고 오히려 피곤함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직장 다닐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이것저것 대충이라는 것에도 모두 이해해 주었는데 그 또한 이젠 용납이 안 되는가 보다. 차라리 다시 직장이라도 다닐까 생각도 해 보지만 이젠 어디에도 반갑게 반겨줄 직장이 없다. 나이는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직장엔 그 숫자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거슬리지 못한다. 마음은 언제나 이팔청춘이라고 하지만 내가 아닌 상대가 바라보는 이팔청춘은 없다. 이제는 나이에 맞는 숫자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는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조짐이 보이면 벼락같이 병원에 가서 그 원인을 찾고 처방을 받아오시는 연로하신 윗분들을 보면서 훗날 내 모습이려니 했었다. 요즘 들어 그 모습을 내게서 찾을 때면 실없이 웃음이 먼저 나온다. 며칠 전에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순서를 지키느라 의자에 앉아 있는데 어린 간호사님이 호칭을 어르신 어르신 하길래 돌아다 보니 아무도 없길래 그냥 자리에 앉아 있으려는데 내게로 다가와서 나를 보고 다시 어르신이라고 호명을 한다. “저요?” 하니까“네!”라고 한다. 순간 나도 모르게 “왜 내가 어르신인가요?” 했더니 간호사 얼굴에 멀쑥한 표정이 역력했다. 호칭이 뭐 그리 대수라고 환자분이라고 부르지 않은 것만도 다행한 일이지. 돌아오면서 스스로 위로도 해 보고 중얼중얼 어르신이라는 단어에 익숙하여지려고 요즘은 노력하고 있다. 젊어 시절 나이가 드신 분들께 어르신이라고 호칭을 부르던 그 시절 그분들도 지금의 나처럼‘왜 내가 어르신인가요’라고 반문이라도 했었다면 난 뭐라고 해답을 찾아냈을까 싶다. 어르신이란 어른을 높여 부르는 호칭이 분명할진대 왠지 늙은이 고령자라는 생각에 은근 기분이 상하다. 요즘 들어 친구들도 만난 지 오래다. 자주 만나면 정보도 교환하고 이런저런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하하 호호 웃어넘기면 되는데 자꾸 성격이 까칠해지는 것 같다. 나이는 그냥 먹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말이다. 나이가 들면 너그러워져야 한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말수도 적어야 하고 나이가 들면 배려심도 많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나이가 들면 이 문제인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만사가 다 형통하고 유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어떤 호칭에도 맘 상하지 않는 너그러운 마음이 현실에 익숙해 졌으면 좋겠다. 어르신이라는 호칭에 맞는 그런 모습은 또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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