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황혼은 온다

신옥주 | 기사입력 2021/06/22 [08:33]

누구나 황혼은 온다

신옥주 | 입력 : 2021/06/22 [08:33]

▲ 신옥주 주부독서회원   

청춘의 사랑을 그린 많은 책 사이에서 외로이 황혼의 사랑도 중요하다고 부르짖는 책을 발견했다. 우연한 기회에 읽었는데, 이 나이가 되니 좀 가슴에 남는 내용을 보고 내가 나이가 들긴 들었네 하며 다시 보게 된 책이다. 회사생활을 주 무대로 그려진 ‘시마과장’ 시리즈의 작가 히로카네 켄시의 작품 ‘황혼 유성군’은 단편 모음집으로 중장년의 심리와 인간관계를 평범한 가정생활보다 불륜이나 비도덕적인 관계로 설정해서 그리고 있다. 처음 읽을 때는 불륜이 너무 많아 거부감이 느껴져 중도에 읽기를 포기하기도 했었는데, 작년에 괜히 읽고 싶은 충동이 생겨 21권을 끝까지 읽었다. 작가는 불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중년이 되어 지나간 인생을 되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심리에 집중한다. 물론 모든 내용이 비도덕적이지 않지만, 또한 아름다운 결말로 끝맺는 것은 아니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청춘일색이고 아줌마가 된 여배우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하며, 만화에서도 중년들은 주인공이기보다 누구네 엄마나 아빠, 참견하는 이웃으로 나오는데 ‘황혼유성군’에서는 무기력하고 무능한 중년이 아니라 배경으로 보이는 인간군상이 아니라 뒤늦게 찾아온 인생의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라서 좋았다. 주인공은 자신 앞에 닥친 사건을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다시 힘을 낸다.

 

일본은 애니메이션분야에서 세계 일인자로 군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주제와 소재, 기획력과 음악 모두가 최고이다. 특히 누구나 공감하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작가가 그리고싶으면 그리는 주의라서 매우 다양한 내용을 볼 수 있다. 히로카네 켄시가 시마과장을 그리기 전에도 많은 단편을 발표했는데, 하나같이 암울하고 벗어나기 힘든 불우한 환경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린 ‘인간교차점’이라는 작품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황혼유성군’이 더 좋다. 몇 년 전부터황혼이혼이나 졸혼이라는 용어가 종종 뉴스에 나온다. 사랑해서 결혼을 했든, 선을 봐서 결혼을 했든, 아직까지는 자식을 위해 이혼을 미루는 경향이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자식을 다 키워 결혼을 시킨 후 회사를 은퇴하면 모든 의무에서 끝났다는 듯이 부부가 헤어지는 것이다. 나는 황혼이혼도 싫고 졸혼도 싫지만, 그렇다고 인간적인 연민조차 남지 않은 배우자와 계속 살라는 의무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백세인생이라는데 남은 인생은 좀 더 즐겁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우리가 처음부터 엄마아빠로 태어난 줄 아는 아이들도 있다. 우리에게도 청춘이 있었고, 두근거리며 바라보기만 하던 동경을 품은 학창시절을 보냈고, 처음 손을 잡았던 심장이 터질까봐 걱정하던 설레임이 지나갔고,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이 가는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모른다. 혹시 나의 글을 읽는 여러분은 어떠한가. 평생 단 한번이라도 죽어도 좋다고 느꼈던 마음이 있었는가.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은 동일 인물인지 아니면 새로운 사랑인지 묻고 싶다. 이 만화에서는 사랑의 여러 유형이 등장하고, 첫사랑, 끝사랑, 치정, 불륜, 에로 등 내가 만날 수 있는 모든 장르의 사랑이 다 나온다. 그러면서도 무디어진 내 가슴 한쪽을 쿡 찌르며 다가온다.

 

젊은 시절의 사랑만 두근거리며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겉모습을 한꺼풀 벗겨낸 지금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봐야 할 때 선택하는 사랑이야말로 순수할 수 있다. 육체의 아름다움에 가려 미처 볼 수 없었던 영혼의 맑음을 마주한 사랑이다. 탱탱한 피부는 처지고, 세수하고 난 뒤 보이는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닌 것 같은 이 나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눈가의 주름과 자글자글한 얕은 주름이 가득한 턱을 보면서 지나가는 젊음이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하지만 영혼의 문제는 다르다. 어떤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불안해하고 흔들리는 나이는 지나갔다. 인생의 쓴맛도 단맛도 다 맛본 나이에 더이상 부풀려진 가식이나 달콤한 거짓을 원하지 않는다. 비어있는 것은 비어있는 대로, 흔들리는 건 흔들리는 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 상태로 배우자와 헤어지든, 서로의 자유를 인정해주든, 용기가 없어 독신으로 살든 자기를 돌아보는 동안 후회했던 모든 것을 반성하고 인생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황혼의 나이에 불씨조차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 가슴에 사랑이 다시 찾아오는 것을 보여주는 만화 ‘황혼유성군’. 아~ 나도 다시 한번 두근거려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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