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석

김영희 | 기사입력 2019/09/30 [13:15]

반려석

김영희 | 입력 : 2019/09/30 [13:15]

▲ 김영희 시인     ©

언제부턴가 나는 집안에 있는 날보다 집밖에 있는 날이 더 많아졌다. 또한 외지에 있는 날도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많은 풍경을 만나게 된다. 2012년 가뭄이 심해 강바닥이 드러나던 해였다. 충주시내버스종점 여행이 끝나가던 중이었다. 목계다리를 건너던 중 강바닥이 드러난 강을 바라보다 내리게 되었다. 그날은 종점까지 못가고 목계다리 아래쪽으로 들어갔다. 걸어서 건너갈 정도로 강물이 가에만 흘렀다. 강 가운데는 가뭄이 만들어 낸 숲이 우거진 작은 섬이 보였다. 그래도 강가에 흐르는 물은 넓적다리까지 잠겼다. 충주에 살면서 처음으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물을 건너자 바닥이 드러난 곳에서는 돌 위로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햇볕에 반짝이며 나는 고운 소리였다. 바로 그곳에 하트돌이 있었다. 나는 돌을 보자 심장이 뛰었다.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하늘 향해 반듯하게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나는 하트돌과 동행했다. 지인들은 무겁게 왜 들고 다니냐고 한다. 그럴 때마다, 사랑은 무겁지 않다고 말한다. 많이 다니다보면 하트돌도 여러 사람을 만난다. 사람을 만나다보니 애칭도 여러 개다. 어느 영화감독은 하트돌을 보자마자 '일조'라고 지었다. 아마 보는 즐거움에 일조한다는 뜻으로 풀이해 본다. 윤강로 시인은 하트돌이라고 이름 지었다. 하트돌이 일조라는 이름을 얻게 되자, 어느 시인은 더 높여서 삼조라고 지었다. 자기가 지은 이름이 최고가 되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 후로 하트돌의 최고 이름은 현재 삼조다.

 

나는 하트돌이 다이아보다도 좋고 금보다도 좋다. 보석은 돈만 있으면 똑같은 모양을 여러 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이 빚은 하트돌은 이 우주 안에 단 하나다. 그 하나가 나에게 왔기에 나는 행복하다. 하트돌은 우주가 만들어낸 한 편의 사랑 시다. 하트돌은 먹을 것을 주지 않아도, 옷을 입히지 않아도 자태를 구기는 일이 없다. 함께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나를 구속하지 않고 늘 자유를 준다. 내 시간을 축내는 일도 없고 오로지 사랑으로만 반긴다. 얼마나 많은 세월을 견디며 갈고 닦아 하트돌이 되었을까. 하트돌이 나에게 온 후부터 나는 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모양의 돌이 더 생겼다. 산타모양, 산 모양, 오리 모양, 공처럼 둥근 모양 등 다양하다. 돌을 바라보고 있으면 심심하지가 않다. 하트돌도 자주 쓰다듬어 주면 더 예뻐 보이고 빛깔도 더욱 빛난다. 이렇듯 가진 게 없는 나는 자연에서 늘 위로를 얻는다.

 

한 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브롬펠지어 자스민을 사다 화분에 키웠다. 그 보라색 꽃향기는 정말 매혹적이다. 하지만 며칠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시들거리고 꽃도 더 이상 피려고 하지 않는다. 몇 번 그렇게 화초를 잃고 나서는 더 이상 키우질 않는다.

 

요즘은 반려견을 데리고 운동 나오는 사람을 많이 본다. 가끔 시내버스에는 2층 개집을 들고 타는 처녀도 있다. 1층은 반려견이 있고, 2층은 강아지 간식, 그리고 장난감과 옷 등이 들어있다. 어떤 강아지는 작은 배낭을 메고 멋진 선글라스까지 쓰고 외출을 한다. 요즘은 반려견 납골당도 있어서 장례도 치러준다고 한다. 그들에겐 반려견이 가족처럼 생각되기 때문일까.

 

돌에 관심을 가지면서 비로소 나는 그들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돌은 늘 침묵으로 기다려준다. 돌 앞에서 나는 늘 이기적이다. 내가 보고 싶을 때 보고, 바쁠 때는 잊고 지내다 한 번씩 다가가기 때문이다. 돌을 가만히 보면 도를 닦는 마음이 된다. 큰 돌에 부딪혀 깨지고 구르고 떨어지다, 수없이 물살을 견디고 밟힐수록 결이 고와진다. 돌도 지역마다 비슷한 특색을 지닌 돌끼리 모여 있는 데가 있다. 백담사 올라가는 계곡에는 흰색 띠를 두른 바위들이 보인다. 몽돌이 있는 바닷가는 몽돌끼리 산다. 거친 돌이 많은 산은 거친 돌끼리 모여 있다. 하트돌은 내 형편에 맞는 반려석이고, 자연이 선물한 가장 사랑스러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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