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봄길

남상희 | 기사입력 2022/04/25 [08:42]

꽃길 봄길

남상희 | 입력 : 2022/04/25 [08:42]

▲ 남상희 시인     ©

봄이 오긴 한 거니? 봄길 따라 꽃길도 열렸다 하던데. 바람이 코끝을 스칠 때마다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것을 보면 봄은 봄인 게 맞다. 새싹들도 대지 위를 바쁘게 채우고 있다. 꽃들의 향연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나에게 봄은 천천히 오길 바랐다. 조금씩 조금씩 느리게 와서 매일 봄을 느끼고 싶었다. 언 땅을 뚫고 빼꼼히 머리를 내밀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새싹들이 움츠리는 모습을 내 눈으로 하나하나 확인하고 싶었던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봄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봄이 오려나? 생각할 틈새도 주지 않고 어느 날 봄은 내 곁이 아닌 모두의 곁에 이미 와 머물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봄은 늘 그렇게 기다림의 의미도 한순간에 깨우쳐 준다. 맞이할 준비도 없이 그냥 와 있는 봄 길엔 꽃길도 함께 와 있다. 거리마다 바람 속으로 너울거리며 날아드는 꽃잎은 하나하나가 모두 바래 춤을 추면서 잿빛 포도 위를 이리저리 날다가, 뒹굴다가 발아래로 다가와 꽃길을 열어준다.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는데도 바람이 살랑살랑 신호를 올릴 때면 꽃잎들은 저마다 번지점프를 한다 떼를 지어서. 여기저기에서 두려워 나무 끝에 매달린 꽃잎들은 용기를 내어 다음 신호라도 기다리는 듯 깊은 호흡을 하면서 저마다 준비를 하는 것 같다. 살랑살랑 봄바람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리움의 향기도 배려 깊은 엄마처럼 챙겨다 준다. 엄마는 언제나 우리에겐 희망이고 편안한 안식처다. 봄날은 외롭고 쓸쓸한 이들을 보듬어 주고 안아준다. 따뜻한 봄볕으로 얼었던 맘을 녹여주고 홀로 외롭게 지낸 세월의 흔적을 위로라도 하듯 들로 산으로 산책을 나서게 한다. 발길 닿는 그 길엔 오랫동안 멈추었던 고독한 세월의 벽을 허물고 이제 모두 함께 하는 그런 세상으로 걸어나 오게 한다. 꽃으로 장식된 산천마다 사람들의 물결이 보인다. 그동안 한적했었던 거리마다 북적대는 인파를 보니, 이제는 살맛이 나는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 맞다. 멀리 소식만 전했던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맘껏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소원했던 바람도 이제 들어주려나 보다. 만나면 오랫동안 안아주고 싶다. 그동안 만나고 싶었던 그들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땐 그저 말없이 안아주면 소통될 것 같아서다. 매일 만나면 할 말이 많지만, 너무 오랜만에 만나면 할 말이 없어 어색함을 줄이기엔 최고다. 거리마다 조금씩 들썩이는 것을 보니 역시 봄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조급했던 많은 시간도 뒤돌아보니 저절로 숙연해진다. 기다림은 기다림을 아는 사람들의 또 다른 희망의 끈이었다는 것을……. 한동안 살얼음을 걷듯 조심 또 조심하며 지내온 시간. 후유증에 시달렸던 두려움의 시간도 위안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습관처럼 써야만 안심이 되었던 마스크도 벗고 맑은 공기 마시며 해방될 날도 곧 오겠다 싶다. 어린 손주들에게 마스크 없는 세상을 선물하고 싶다. 가족들과 맘 놓고 소통할 수 있는 그런 날들을 공유하면서 밝아오는 미래를 맡기고 싶다. 좋은 세상에서 대대손손 잘 살 수 있기를. 오늘도 봄 길은 꽃길이 되고, 꽃길은 봄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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