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에 선 나무

박상옥 | 기사입력 2020/02/25 [15:21]

비탈에 선 나무

박상옥 | 입력 : 2020/02/25 [15:21]

 

비탈에 선 나무

 

김애자(1944~)

 

그대 처음부터 비탈에 선 나무였지

남풍보다 북풍이 더 잦았었지

몸통에 옹이하나씩 생길적마다

그대 살붙이들도 함께 자지러졌지

 

그대 처음부터 시인이었지

허방 디딜 적마다 마모된 시의 뿌리

절벽에 부숴갈아 가난한 사람들

얼룩진 눈물 희망으로 꽃 피우려

눈 부릅떴었지

 

그러나 끝내 질병의 어둠은

시를 홀로 울게 했었지

폐 속으로 시의 이가 빠지고

어두운 땅 속으로 더듬어 가던

시의 언어들마저 길을 잃고 말았지

 

그대 어디로 가시는가

길들인 세상길 버리고

산그늘 밟으며 홀로

어디로 가시는가

집 한 채 지어주지 못한

시의 자식들이며

목숨보다 아끼던

딸 아내 남겨두고

다북솔 밭 너머로

자취 감추려 하시는가

 

*김애자(1944~): 충주출생 월간 수필문학 등단. 수필가이며 시인

                    저서 「달의 서곡」「미완의 집」 「수렛골에 서 띄우는 편지」

                          「내가 하나의 풍경이 될 때」 「점은 생명이다」

                    월간수필문학상, 신곡문학상, 현대수필문학상,

                    충주시민대상, 현, 충주문인협회 고문

 

▲ 박상옥 시인     ©

<비탈에 선 나무>는 수필가이며 시인인 김애자 선생님이 특별히 아끼던 김양기 시인을 가리킵니다. 강릉 김씨 고 김양기 시인은 ‘박제된 천재 시인 이상’의 후손으로서, 번뜩이는 재담과 놀라운 직관력으로 시를 짓던 시인입니다. 이상의 본명 김해경 할아버지를 언급하며, 강릉바다와 어린 시절 추억을 어찌나 맛깔나게 얘기하던지, 허난설헌 문학관을 향하던 문학기행 승객 모두를 한껏 매료시켰었습니다. 2017년 봄이었으니, 송곳처럼 예리한 문학적 직관을 다 펼치지도 못하고, 좌중을 휘어잡던 언변으로 문화해설사도 외면하고, 2월 25일 새벽 허무하게 떠났습니다.

 

“집 한 채 지어주지 못한 / 시의 자식들이며 / 목숨보다 아끼던 / 딸 아내 남겨두고 / 다북솔 밭 너머로 / 자취 감추”고 말았습니다.

 

생각할수록 김양기 시인은 외모조차 윗대 할아버지 ‘이상’을 닮았습니다. 저는 구레나룻에 얼굴빛이 양인(洋人)처럼 창백한 사나이라던 이상 시인을, 김양기 시인에게서 발견할 적마다 , 김양기 시인 몸속에 옹이로 박힌 폐종양이 늘 불안했었습니다.

 

후두암으로 가신 선배 이재호 시인을 좋아하고 따르던 김양기 시인이 폐암으로 떠났습니다. 오감도에 이상 시인처럼 두 시인도 문학예술에 있어서 실험적 창작을 시도하고 열정적으로 문학을 살던 아방가르드였으니, 왜 진정한 천재시인들은 빨리 운명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애자 님은 문학적 열정을 가진 후배들을 다독이는 문단의 대모이십니다. 평소에 작품이 좋고, 열정이 남다른 후배를 사랑하는 자애로움이 남달랐으니, 고 김양기 시인을 기억하는 이들은, 김애자 님의 추모시를 따라 읽습니다.

 

“폐 속으로 시의 이가 빠지고 / 어두운 땅 속으로 더듬어 가던 / 시의 언어들마저 길을 잃고 말았지 // 그대 어디로 가시는가 / 길들인 세상길 버리고 / 산그늘 밟으며 홀로 / 어디로 가시는가” 따라 읽으며 오래 애달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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