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2모작 – 80세 D씨의 동생 복 많은 말년인생

허억 | 기사입력 2020/01/20 [12:47]

인생 2모작 – 80세 D씨의 동생 복 많은 말년인생

허억 | 입력 : 2020/01/20 [12:47]

▲ 허억 명예교수(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면역학교실)     ©

주위의 많은 지인들의 인생 2모작은 우리 모두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것 같아 그들의 이야기를 가능한 여과 없이 쓰고자 한다. D씨는 시골의 가난한 집안의 자재였지만 부모나 사회에 대한 불평 없이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매사에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D씨는 고향소재 고교도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는데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의 권유와 도움으로 서울 명문고에 합격하여 입학이 되었다. 고등하교 입학금과 등록금은 담임 선생님의 도움으로 해결하였고 서울생활은 담임 선생님 지인의 도움으로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입주가정교사로 지내면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했다. 대학졸업 6개월 전에 사랑하는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가난에 시달린 어머님의 서러웠던 한 많은 인생살이를 생각하며 밤낮으로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따뜻한 밥 한 끼 제대로 대접하지 뭇 한 불효한 자신의 나약한 처지를 많이 서러워하며 훗날 자신의 성공을 어머님 묘소에 꼭 바치리라고 다짐했다. 대학 졸업 후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가서 열심히 하여 미국 지도교수로부터 인정을 받아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위수료기간 내내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학업에만 전념했다고 한다. 매우 가난한 유학생으로 살면서 생활비를 최대한 절약해 장학금 일부를 동생들에게 매달 송금했다 한다. 학위를 받은 후 국내 명문 사립 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어 사회 첫 발을 내디뎠다. 재직 시 제자들을 열성을 다해 교육하면서 연구를 열심히 하여 많은 국내외 논문 발표와 많은 특허등록을 하였다. 이런 바쁜 와중에도 학과장 학장 연구소장 대학원장을 역임하면서 대학 학사행정에 많은 봉사를 했다.

 

교수임용 3년 후 투병생활을 오래 하시던 아버님께서 세상을 떠나가셨다. 교육과 연구 업무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고 단란한 가족식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던 불효자로서 가슴이 메어 울고 울었던 장지에서의 슬픈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부모님에게 한 불효를 사죄하는 심정으로 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 자식처럼 뒷바라지 했다고 한다. 물론 아내의 헌신적인 희생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 동생들은 열심히 성실하게 잘 살고 있는데 한 동생은 미주노선 외항선 항해사를 거쳐 지금은 육상근무를 하고 있고, 다른 한 동생은 모 회계법인 회계사로 재직하고 있다. 여동생 셋 중 하나는 고등학교 선생으로 재직 중이고, 하나는 대학병원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고, 막내 여동생은 세무사 남편을 만나 잘 살고 있다고 한다. 힘든 살림에 동생들 뒷바라지 하라 자식들 공부시키느라 전세로 전전하다 50대 중반에 아파트를 장만했다 한다. 대학퇴직 후에는 대학 선배회사에 이사로 근무했다.

 

D씨는 대학 선배회사 법인 등기이사로 억대 연봉을 받기로 계약하고 근무를 시작하였다. 회사에서 연구를 많이 수행해 제품생산을 위한 특허를 출원 등록했다. 회사에서는 특허를 근거로 기술신용보증기금 설비시설자금을 신청해 저리 기업대출을 받아 생산설비시설을 확충했다. 근무한 지 1년 후에 회사가 코스닥에 등록되어 여러 곳으로부터 투자금도 많이 받아 회사가 날로 번창했다. 이런 기쁜 경사는 오래 가지 않고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 여파가 회사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 이로 인해 은행대출이자가 오르고 수금이 되지 않아 유동자금이 악화되어 대출상환 연체가 지속되니 은행에서 공장을 압류하였다. 유동자금 동결로 인한 임금체불이 일어나고 결국 회사 문을 닫게 되었다. D씨가 법인 등기이사로 등재되었기에 회사부채에 대한 무한책임이 있어 살고 있는 아파트도 은행에 압류되어 경매에 넘어갔다, 한 순간 D씨 가족들은 거지신세가 되었고 결국 개인파산을 신청하였다 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1) 가능하면 차입사업경영을 피할 것 2) 월급쟁이는 가능하면 등기이사는 절대 피하는 것이 좋다.

 

이런 딱한 사정을 알고 동생들이 십시일반 모아 편의점 운영 가능한 전셋집을 얻어 주어 기거하게 되었다. 큰 시누이의 도움으로 조그마한 24시 편의점을 개업해 자식 둘 뒷바라지를 위해 늦은 나이에 최선을 다해 앞뒤 가리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 자식들은 대학을 졸업해 지금은 좋은 직장에 잘 다니고 있지만 그 배후에는 애들 삼촌과 고모들의 도움이 많았다. 자식들의 대학 재학시절에 등록금이 부족해 힘들 때는 애들 삼촌과 고모들이 도와 대학을 무난히 졸업시켰다. D씨는 그들이 훌륭하게 장성해 잘 살면서 조카 학업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데 대해 항상 감사히 여기고 있다고 한다.

 

해운업에 종사하는 동생이 8년 전에 D씨에게 별일 없이 노느니 해운회사 주차관리와 경비직을 D씨 체면을 생각해 아주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이 제안을 D씨가 흔쾌히 승낙하고 주저 없이 회사에 출근했다. 한 순간 가장의 도리를 잘못해 온 식구를 길바닥에 내몰게 해서 아내에게 항상 미안하던 터라 그 때 출근 당시 신바람이 났다고 한다. 7년 전에 동생들이 십시일반 모아 구입해준 24평 주공아파트에서 지금까지 두 내외가 즐겁게 잘 살고 있다. 지금 80세 나이에 직장도 있고 내 집도 있고 특히 부부내외가 건강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고 한다. 요즘 집사람도 마음이 편하고 행복하다고 하니 아내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이 좀 가벼워지며 D씨 역시 행복하다고 한다. 그 동안 어려웠던 시절들을 아무 불평 없이 시동생들과 시누이들을 부모대신 뒷바라지 잘 해준 아내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직장 따라 멀리 살고 있는 자식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어 주말에는 집에 와 식사를 같이 한다고 하니 이 또한 뿌듯하지 않는가 말이다. D씨는 인생 말년에 처복, 동생 복, 자식 복, 일복, 건강 복이 많으니 다복한 그의 말년 인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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