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나무 전세

박상옥 | 기사입력 2017/11/08 [09:24]

단풍나무 전세

박상옥 | 입력 : 2017/11/08 [09:24]

충주문협에서 실시한 중원전국백일장공모충주중원문학상시 부문 최우수작

 

단풍나무 전세

 

                               김은순(김도연)

 

단풍나무 밑엔 귀뛰라미 울음소리가

천등산을 벌겋게 달구면

단풍잎들은 겨울에게 손편지를 쓴다

그늘이 하나의 관이다

제 죽을 자리를 소리로 파고 있는 귀뚜라미들

제몸 뻘겋게 달아오를 때

앞서거니 뒤서거니 단풍나무에

전세를 드는 것들은 굼벵이도 있다

소리 꺼놓고 다시 알로 돌아가 있는 시간

그들에 전세비는 돌아가는 시간 단풍나무

몸에서 작은 전기가 된다

단풍나무들도 수액을 끊고 잎이 동안거에 든다

자그락 자그락 조약돌도 걸어와

나뭇잎에 숨는다

천등산 지킴이들도 모두 나뭇잎 신발을 신는다

박달나무와 느릅나무도

단풍나무 그늘에 잠시 젖는다

첫눈들도 제몸 녹이고 싶어 단풍나무에 든다

그때 내장이 맑은 천등산도 처음으로 문턱을 비워낸다

 

 

▲ 박상옥 (사)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장     ©

나무가 시간을 건너와 붉게 물드는 계절입니다. 사람이 시간을 견딤으로 하얗게 늙어가는 것처럼 산은 시간을 견딤으로서 산에 사는 많은 생명들을 가만히 품어 안습니다. 그리하여 가을이면 여름내 드리웠던 산그늘도 하나의 관이 됩니다. 귀뚜라미 굼벵이를 비롯한 미물들이 어떻게 돌아가고 다시금 돌아오는지, 스스로 수액을 끊고 동안거에 드는 단풍나무 품은 참으로 넓습니다. 그 단풍나무를 품고 있는 천등산은, 지등산 인등산과 더불어 북동쪽 충주시의 모든 생명을 감싸 안고 있으니 우리 모두가 든든합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한 걸음에 충주를 방문했던, 김은순 시인의 영예를 거듭 축하하며, 먼 훗날 나뭇잎 신발을 신고스스로 잦아들 나이까지 특별하게 충주를 기억해 주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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