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체인 세균과 비루스를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있다면

허억 | 기사입력 2017/02/09 [08:40]

병원체인 세균과 비루스를 우리 육안으로 볼 수 있다면

허억 | 입력 : 2017/02/09 [08:40]
▲ 허억 명예교수(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면역학교실)   

세균의 직경이 커봐야 2∼3㎛(2/1000∼3/1000 ㎜)이다. 비루스는 이보다 훨씬 더 작다. 우리 몸 안팎에 이들 병원균들이 우글거리고 있는데 우리들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즐겁게 잘 살고 있다. 만약 볼 수 있다면 불행의 시작일 것이다. 친구끼리 대화할 때 친구의 입과 코에 있던 세균들과 비루스들이 내 코 내 입으로 실제로 유입되고 있고, 나의 몸에 살고 있던 세균들과 비루스들이 나의 친구 입이나 코를 통해 친구 몸으로 실제로 유입되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볼 수 없을 뿐이다. 이들을 우리 눈으로 본다면 어떤 상항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산천초목 보듯이 아름답게 보인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만 아름답게 생기지도 않은 많은 세균 비루스들이 이리 봐도 보이고 저리 봐도 보인다면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인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요즈음 미세먼지 주의보가 내려도 두문불출하는 분들이 많은데 세균 비루스를 볼 수 있다면 중환자가 이용하는 무균실을 설치해 살아야 된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설령 무균실에 산다면 무슨 인생살이를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많은 세균들이 음식위에 내려앉거나 꿈틀거리는 것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어느 누구가 마음 편히 음식을 먹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안 보는 것이 아니라 못 보니까 우리가 웃으며 음식을 먹을 수 있고 가족 친지 또는 동료들과 같이 음식을 먹을 수 있지 이들 병원균들을 볼 수 있다면 도저히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들이 많겠지만 우리 시력을 1.5 또는 2.0으로 한정지어 놓은 것은 정말로 고마운 선물이라고 나는 항상 생각한다.
우리 혈구 중 제일 작은 세포인 적혈구가 세균 크기와 비슷하거나 조금 작을 수 있지만 비루스보다는 훨씬 크다. 만약 상처가 났을 때 수백만 개의 적혈구가 흘러나와 몇 분 후에 죽어 가는 모습을 본다면 누구나 씁쓸해 할 것이다. 상처가 났을 때 그저 붉은 색깔의 체액으로만 보게끔 해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또한 더 이상 못 보게 한 신의 선물에 감사할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이들 적혈구를 보지 못하니까 간단한 상처발생 시 휴지로 물 닦아내듯이 피를 쓱쓱 대충 닦아 내고 대일밴드 하나 붙이고 끝낸다. 혈액이란 많은 사람들이 붉은 색을 띄는 체액로만 생각하는데 체액은 혈장(plasma , 血漿)이고 이 혈장 색깔은 투명한 담황색을 띄는데 피가 붉은 색으로 보이는 것은 혈구 중 제일 작은 적혈구가 수백만 개 있기 때문에 붉게 보이는 것이다. 적혈구는 철이온(Fe++)을 가지고 있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단백질을 표면에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 단백질을 이용해 몸 구석구석에 산소를 공급한다. 산소에 의해 적혈구가 가지고 있는 헤모글로빈의 철(Fe++)이 산화되어서 즉 쉽게 얘기하면 헤모글로빈에 결합된 철이 산소에 의해 녹슬어서 피가 붉게 보이는 것이다.
끝으로 한 예를 더 든다면 우리는 하루에 한두 번 대변을 본다. 정상인의 대변의 건조부피 중 절반 이상이 세군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르고 살고 있다. 정상인의 대장 대부분이 세균으로 가득 차있고 세균종류만 하더라도 300∽1000종이 되지만 이 중 30∼40종이 대다수를 이룬다. 이런 우리 대장 상항을 모르고 있고 또한 눈으로 못 보니 얼마나 축복받은 일이지 아니한가? 만약 볼 수 있는 시력을 가지고 있다면 변기에 기분 좋게 앉아 볼일을 볼 수 있겠는가? 엉덩이 밑에서 수십 억 마리 세균들이 뒤엉켜 우글거리는 모습을 보았을 때 겁도 나지만 매우 징그러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상상이 아니고 실제 매일매일 일어나는 사실현상인데 우리가 우리 눈으로 보지 못하니까 그냥 대수롭지 않게 간과하고 있을 뿐이다. 이 또한 보지 못함에 대한 감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위에서 열거했듯이 세균 비루스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세상 살 맛이 없는데 세상만사 다 보고 산다는 것은 불쾌한 신의 선물에 불가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만사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못 보고 사는 것이 몇 십만 배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든지 다 볼 수 있고 다 들을 수 있다면 구역질나서 하루도 즐겁게 못 살 것이다. 못 들음에 대한 신의 축복의 한 예로 베토벤은 세상만사 들을 수 없었을 때 만고에 길이길이 빛날 명곡을 남기지 않았는가 말이다. 인생살이에 필요한 일부분만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한 것이 신이 우리 인간에게 준 크나큰 선물이라 생각되고 그저 감사할 뿐이다. 요즈음 같이 정치꾼들의 아귀다툼으로 인한 시끄러운 세상살이에는 귀 막고 눈 감고 사는 것이 건강의 비결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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