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태백산 공업지대 주요 공업도시로 성장하던 충주는 충주댐 건설로 인해 공장이 줄어들고 허가가 어려워지자 충주경제는 많이 위축되기 시작했다. 과거의 영광이 일차 도청소재지를 청주로 빼앗겼던 1908년 이후 급격히 쇠락해 졌고 1980년대 초 충주댐 건설로 인해 또 성장의 기류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경제발전으로 인해 성장기류를 타고 급성장한 도시나 새롭게 태어나 성장한 도시들이 즐비한데도 충주는 삼국시대 제2의 도시, 고려시대 8목 중의 하나와 수운내륙의 최대 항구도시, 조선시대 전국인구 4위를 기록했던 충주는 점차 중소도시 중에서도 쳐지는 도시로 한참 개발에서 밀려난 도시가 되었다. 댐 주변 도시들이 거의 충주와 같은 신세를 면치 못한 것 역시 댐으로 인한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권리를 찾아야한다. 바다와 동떨어진 내륙의 도시로서 충주는 물놀이 할 곳이 목행강, 달천강, 단월강 뿐이었다. 그러나 댐이 건설된 이후에는 단월강 하나만 남아 있을 뿐이다. 충주사람들의 놀이터가 댐으로 인해 사라진 것이다. 또한 공장폐수가 많이 줄어든 요즘에도 충주에는 공장이 800여개 정도로 음성의 2200여개 진천의 1300여개에 비해 아주 초라한 성적을 낼 뿐이다. 이것은 수자원 공사의 지원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수자원으로 인한 피해를 입은 충주이기에 정부에서 발전 로드맵을 제시해 공해나 오염 없는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수변구역 주민들에게 몇푼주는 것으로 할일 다 했다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동안 충주의 피해에 대한 보상은 이제 정부 차원에서 발전적 동력을 심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전국 댐 주변 도시들과 함께 발전 할 수 있도록 정부의 배려가 꼭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균형발전이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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