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암을 지나 가금양수장을 지나면 나름 세 갈래 길을 만난다. 계속 이어지는 찻길이 있는가 하면, 차에서는 상상도 못할 걷는 길이 둘이다. 하나는 조정경기 중계방송을 위해 놓은 중계트랙이고, 다른 하나는 중계트랙이 시작되는 주차장에서 강가로 이어진 산책로이다. 세 길을 모두 걸어봤지만, 가장 맛이 없는 길이 찻길이다.
중계트랙을 따라 걸으면 직선으로 1㎞가 이어지는데, 물 위에 설치된 시설이어서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특히 봄ㆍ가을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살랑살랑 바람이 불 때 걸으면 좋다. 트랙을 걸으며 뒤돌아보면 탄금대까지 이어진 물길이 보이고, 또는 남산과 계족산, 대림산이 맑은 날에는 또렷하다. 거기서 보는 계족산 북면은 커다란 봉황이 나래를 편 듯하다. 원래 물 위의 트랙이 끝나는 지점에서 땅으로 1㎞의 트랙이 이어지는데, 끝 부분이 꺾여서 중앙탑 쪽으로 나와서 다시 걸어야 된다. 몇 년째 보수하지 않고 방치된 게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강가로 이어진 길도 괜찮다. 숲이 우거져 더위에 지칠 때 그늘 삼아 걸으면 시원한 길이다. 보조댐이 만들어진 후 수위가 높아져 옛길이 사라졌지만, 강을 따라 흐르던 길이 어떠했을까를 상상하기에 좋다.
두 길을 따라 걸으면 중앙탑으로 발길이 모인다. 중앙탑은 국보 6호로 지정되었고, ‘충주 탑평리 칠층석탑’이라는 이름이 있다. 하지만 나는 중앙탑으로 부르는 게 좋다. 중앙탑의 건립과 관련해서 세 가지 전설이 있다. ① 김생건탑설(金生建塔說) ② 중앙탑설(中央塔說) ③ 왕기제압탑설(王氣制壓塔說)인데, 어느 것이 정설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중앙탑은 보기 드물게 크다. 고층 건물이 없었던 옛날에는 더욱 도드라져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쓴 충주의 지지류에는 중앙탑과 관련된 어떤 기록도 없다. 그것은 마치 충주 시내에서 가장 높고 큰 산인 계족산(鷄足山)에 대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계족산 실종 사건>과 <중앙탑 실종 사건>으로 빗대어 부른다. 공식 문서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몇몇 사람의 문집에 실린 시가 몇 편 있다.
처음 보이는 한시는 조선시대 서원(書院)의 시작점에 있는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다. 그는 1541년 6월 24일, 충주에 도착해 며칠 머물며 탄금대와 가흥창 사이를 돌아본 일이 있다. 그때 배를 타고 강에서 바라본 중앙탑을 노래했다.
<월탄 탑 [月灘塔]>
塔影亭亭落照中 석양빛에 길게 드리운 탑 그림자는 妄緣虛做萬年功 허망한 인연으로 빈 터에 지은 만년의 공이로세 經過今古無窮變 예나 지나 지나온 무궁한 변화에 迎送西南幾箇雄 서쪽으로 남쪽으로 맞고 보낸 문호(文豪)는 몇이던고 衆岳獻晴雲鬢亂 맑게 개인 뭇 산엔 구름이 흩어지고 一江含媚膩波洪 석양 머금은 강줄기엔 살진 물결이 일렁이네 黃昏巢鷺避鸇立 황혼에 깃든 해오리는 송골매를 피해 섰더니 挾子冥冥飛向東 새끼 낀 채 훨훨 날아 동쪽으로 가는구나 - 주세붕, 『무릉잡고(武陵雜稿)』 권5, 별집, 시
월탄탑은 곧 중앙탑을 가리킨다. 월탄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은 배를 타고 달여울[월탄]을 지나고 본 중앙탑을 슬쩍 시로 그려놓았다.
<금탄 북안에 탑이 있다. 높이가 십여 장으로 멀리서도 보인다. [金灘北岸有塔 高可十餘丈 遠遠可望]>
相思巖已遠 상사바우는 이미 멀어지고 白塔立如人 하얀 탑이 사람처럼 섰다 參差水中象 상아처럼 물속에 들쑥날쑥 佛影幻相因 불영(佛影)인 양 환상적이다 碑版昧莫徵 비판(碑版)은 어둑하여 알 길 없고 滄波逝幾春 푸른 물결에 지난 봄은 몇 번일고 天花散無跡 하늘 꽃 흩어져 자최 없고 野草合成茵 들풀 얽혀 자리를 이뤘다 我筏近彼岸 내 배는 언덕 가까이서 沿洄豈迷津 오르락내리락 몇 번을 헤맸던가 - 김창흡, 『삼연집』 습유 권3, 시
상사바우는 월탄에 있던 바위이다. 배에서 본 하얀 탑, 곧 중앙탑이다. 비판(碑版)을 언급했는데 중앙탑의 내력을 적은 비석이 아니었을까? 두 시에서 ‘월탄탑’과 ‘백탑’으로 언급한 중앙탑은 배를 타고 가며 강에서 바라본 것이다.
주세붕과 김창흡이 강에서 보고 시에 언급한 중앙탑 외에 영국 사람이 지나며 본 풍경 묘사에 그려진 장면이 하나 있다. 이사벨라 비숍 여사가 쓴 <Korea and her neighbours>(1898)에서 배를 타고 서울을 출발해 남한강을 따라 올라오다가 중앙탑을 지나며 보고 들은 것을 적었다. 1894년의 일이다.
“Eight days above Seoul, on the left bank of the river, there is a ruinous pagoda built of large blocks of hewn stone, standing solitary in the centre of a level plain formed by a bend of the Han. The people, on being asked about it, said, “When Korea was surveyed so long ago that nobody knows when, this was the centre of it.” They call it the “Halfway Place.” After that the only suggestions of antiquity are some stone foundations, and a few stone tombs among the trees, which, from their shape, may denote the sites of monasteries.(서울을 출발한 지 8일째, 왼쪽 강둑 위에 한강의 굽은 부분에 있는 평평한 평원의 중앙에 깎은 큰 돌로 지은 홀로 서있는 탑이 있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언제인지 모르지만 오래 전에 조사했을 때, 이곳이 그 중심이었다.”고 했다. 그들은 그곳을 "중간의 장소[Halfway Place, 중원]"라고 부른다. 그 후 고대의 유일한 시사점은 몇 개의 돌로 된 기초와 나무들 사이에 있는 몇 개의 돌로 된 무덤들인데, 그것들의 모양으로 보아 수도원[절]의 장소를 나타낼 수 있다.) (이사벨라 L. 버드 비숍. ‘The Han and its people’, “Korea and her neighbours”, London. 1898. pp.101-102.)”
비숍 여사가 들었던 이야기는 통일신라의 중앙이었다는 전설이었다. 중앙탑설이 현지에서 전설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임상원(任相元. 1638~1697)이 1676년(丙辰) 음력 3월 3일경에 청풍부사로 부임하는 길에 배를 타고 올라오며 중앙탑을 보고 지은 시가 있다.
<김생사탑(金生寺塔)>
激電奇巖過 번개 치는데 기이한 바위 지나니 停雲古塔來 머문 구름 사이로 옛 탑이 다가온다 野禽巢始定 들새는 비로소 깃들이고 歸雁響空哀 돌아가는 기러기 소리 창공에 애닯다 名共沈碑水 명성은 비석과 함께 물에 잠기고 形疑造字臺 의아한 모양은 글씨 쓰는 대석 같은데 高標猶獨秀 드높은 자취는 여전히 홀로 빼어나니 長想絶倫才 생각건대 뛰어난 재주로다. - 임상원, 『염헌집』 권4, 시
배를 타고 올라오며 강에서 옛 탑[古塔]을 보고 김생(金生)의 명성을 떠올리며 지은 시인데, 제목이 김생사탑이다. 중앙탑에 얽힌 전설 중에 김생건탑설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중앙탑’과 ‘충주탑평리칠층석탑’이라는 이름 중에 그대의 마음이 끌리는 이름은?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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