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재와 새재를 너머 가흥창에 이르는 길도 이제 종반부이다. 갈마에서 가흥까지 가는 길은 둘로 나눠 걸어봤다. 하나는 옛 국도를 따라 중앙탑과 안반내를 지나 보조댐을 거쳐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창동에서 갈라져 풀무고개 너머 누암리 고분군을 지나 고구려비를 거쳐 잣고개를 넘어 가흥에 닿는 길이다. 먼저 안반내를 지나가는 길을 연재한다.
그곳을 걸었던 작년과 올해 초와는 다르게 요즘 이 길을 걸으려면 약간의 불편이 따른다. 여름 더위를 피해 한동안 걷기를 중단했었다. 그리고 연재에 필요한 사진이 부족해 보충하려고 8월 30일에 시내버스를 탔다. 그런데, 시내버스가 갈마쪽으로 가지 않고 곧장 탄금대교로 향한다. 급히 시내버스 기사님께 갈마로 가지 않느냐니까 공사 중이어서 얼마간 통행이 금지되었다며 신호등을 지나서 내려주었다.
작년 여름 수해로 여러 곳에 산사태가 있었다. 지금 걷고자 하는 길에도 창동과 장미산에 산사태가 있어서 임시 방벽을 쳐놓았었다. 6월에 장미산 자락길을 지날 때에 보강ㆍ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공사를 끝내고 창동의 산사태 지점에 대한 공사로 옮긴 것이다. 시내버스에서 내려 걷다 보니 <창동마을 진입금지>를 알리는 현수막이 여러 장 붙어 있다. 거기에는 ‘24년 7월 공사 착공 → 24년 11월 준공 예정’이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탄금교를 건너 갈마, 창동을 경유하는 시내버스를 이용하려면 최소 12월이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탄금대 시내버스 정류장을 지나서 다음 정류장에 내려서 걸어야 한다. 공사 때문에 시내버스 운행이 통제된 것이지,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은 가능하다.
탄금교를 건너자마자 갈마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내린다. 보통은 404번 시내버스를 이용했다. 시내버스 정류장 옆에 세운 문화재 이정표를 보고 강을 따라 걷는다. 아무래도 달천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지점이기에 합수머리에 눈길을 주게 된다. 건너편 탄금대를 보면서 달천에 걸쳐 놓인 탄금교와 탄금대교, 충주 외곽도로로 남한강을 가로질러 금가면과 연결해 놓은 우륵대교도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온다.
합수머리를 돌아서며 왼편의 바위산이 쇠꼬지이다. 부르기는 그렇게 불렀지만, 표기는 ‘금곶(金串)’으로 적었다. 우륵대교가 놓인 충주 외곽도로를 개설할 때에 그곳 어딘가의 동굴에 ‘황금박쥐’가 살고 있는 게 확인되어 한때 뉴스의 중심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황금박쥐가 살던 동굴은 예전에 채광하던 철광산의 흔적이었다.
길을 걸으며 길에 있는 흔적은 그것대로 읽어가면 된다. 하지만 이 길을 걸을 때는 또 하나의 길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길’이 그것이다. 달천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합수머리를 지나 쇠꼬지 아래는 오목하게 길이 휘어 돌아간다. 그 휨은 보조댐을 만들기 전에 강줄기 물길의 흐름에 의해 만들어진 곡선이다. 그곳에 있었던 여울이 ‘쇠꼬지여울’로 불렸고, ‘금곶탄(金串灘)’이라고 적었었다. 두 물이 합류하여 합수머리이지만, 강을 거슬러 오르는 배가 달천을 따라 괴산쪽으로, 또는 탄금대를 지나 단양쪽으로 올라가는 뱃길의 갈림길이기도 하다. ‘쇠꼬지여울’은 남한강을 따라 내려오는 여울이 다시 험해지기 시작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강 건너 금가면에는 캠핑장이 조성되어 있다. 그 부근 어딘가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옛날에 천지가 물에 잠겼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 혼돈의 세상이 끝나면서 물 빠진 땅에 새로운 세상을 일군 이가 마고할미라고 한다. 일을 마친 마고할미의 옷은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마고할미는 흙투성이가 된 빨래를 하기 위해 합수머리 건너편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한창 빨래를 하고 있는데, 달천쪽에서 섬 하나가 둥실둥실 떠내려오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본 마고할미가 빨래방망이로 툭 쳐서 자리 잡은 것이 곧 ‘건문산(犬門山) 또는 대문산(大門山) 또는 탄금대(彈琴臺)’가 되었다.’는 줄거리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충주산(忠州山)이라는 지명이 다른 곳에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8권의 경기도 양근군의 산천조에 ‘충주산은 군 동쪽으로 10여 리 되는 강 가운데 있다.(忠州山 在郡東十餘里江中.)’고 기록하며, 한수(韓脩, 1333~1384)의 시를 소개하였다. 그 시의 한 구절에는 ‘이 지역 토박이가 앞에 나와 말하기를, 저것이 본래 충주에 있던 산인데, 떠내려오다가 여기에서 멈췄기에 충주산으로 부른다 하네(土人前致辭,彼本忠州貫。浮來止於此,故以忠州喚.)’라고 하여, 그 유래에 관해 들은 이야기를 적고 있다. 이곳은 양평군 양평읍에 속하며 양근대교 아래의 섬이다. 그것을 ‘떠드렁산’으로 부르고, ‘부래산(浮來山)’으로 적는다.
설악산에 있는 울산바위를 떠올리게 하는데, 다른 점은 강의 흐름을 생각하고 상상력을 가동하면 이해할 수 있는 그럴듯한 이야기가 된다. 이처럼 이 구간을 걸을 때는 지금은 이용하지 않는 물길에 대한 상상력이 요구된다.
또는 남산성(南山城)을 할미산성[漢美山城]으로 불렀던 예전 상황을 전제한다면, 탄금대와 남산성을 사이에 둔 옛 충주 읍치(邑治)와 관련된 이야기의 구심점을 찾을 수 있다. 행정의 중심이 읍성이었다면, 읍성을 중심으로 형성된 읍치와 관련된 물길과 땅길의 접접은 합수머리이고, 그곳은 충주의 옛날 이야기의 구심점이 된다. 물론 그것은 충주를 어떻게 생각하고 이해하는가 하는 관점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나아가 마고할미의 아들딸이라고 하는 보련이와 장미의 성 쌓기 이야기가 장미산성(薔薇山城)과 보련산성(寶蓮山城)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로 전하는 것을 최소한의 범위에 놓고 상상할 때에 가능하다. 물론 이러한 이야기류가 전국적으로 세계적으로 퍼져있는 보편적인 화소(話素)이긴 하지만, 자동차가 생활의 중심이 되었고, 보조댐이 만들어지며 물에 잠긴 옛 물길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허무맹랑하며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할 수 있는 이야기를 소환하여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출발부터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이 길 걷기는 특히 물길에 대한 상상력을 계속 요구한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홈피에 게재돼 있는 모든 이미지를 무단도용, 사용이 발각되는 즉시 민형사상 책임을 받게 됩니다. ※ 외부 기고는 충주신문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고문은 원작자의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가급적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