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뚜라미, 풀벌레가 애잔하게 가을을 부른다. 먹구름 한겹 벗겨진 밤하늘엔 별들이 반짝반짝 마실 나온다. 삼태성은 동쪽하늘에서, 북두칠성은 서북쪽에서 서로 바라본다. 삼태성 왼쪽으로는 부부별이 나란히 사이 좋게 소풍나왔다. 밤바람은 조금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삼일 후면 처서인데, 오늘 한낮 더위가 36도라고 한다. 오늘은 또 오늘의 더위를 즐겨야겠다. 훅훅 느껴지는 더위지만 내게는 자연 한증막이다. 자연 한증막은 자연바람이 꿀맛이다.
그래도 나의 방에는 선풍기 하나 없이 여름을 보낸다. 선풍기가 있어도 방에서는 틀지 않는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지만, 올 더위는 더 심한 것 같다. 그래서 요즘은 하루 한 번씩 무료 찜질방에 왔다 생각하고 땀을 즐긴다.
불볕 내리쬐는 밖 보다는 에어컨 없는 집이 더 시원하다. 나가면 잠시 더위를 식힐 곳이 많다. 충주시내버스 정류장에는 냉방 시설이 돼 있는 곳이 있어, 쉬어가기 좋다. 버스를 타지 않는 사람들도 시원한 정류장에서 잠시 쉬어간다. 버스를 타도 시원하고 마트를 가도 시원하다. 더운 곳에 있으면 몸이 땀으로 오래 젖어있어서 좋지는 않다. 올여름에는 시원한 계곡 한 번 못가보고 여름을 보낸다.
우리집 뒤 아파트 길다란 파란 수영장에는 아이들이 첨벙 첨벙 뛰어논다. 아이들이 즐겁게 물장구치며 노는 모습을 보니 덩달아 시원하고 즐겁다. 아이들의 웃음 소리는 아파트 위에 걸린 구름마저 춤추게 한다.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뒷도랑 담벼락에 빨간 게 한마리도 소풍나왔다. 가까이 다가가자 작은 눈을 굴리며 집게 발을 휘저으며 경계한다. 살고 싶은 저항이 아주 강해보인다. 나는 빨간게를 한참 바라보다 뒷도랑에 넣었다. 그러자 바로 뒷걸음쳐 나오더니 돌담속으로 쏙 들어간다. 다음에는 새끼들을 데리고 나오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도랑 건너 뒤란에는 호박을 하나 심었는데 호박은 아니 크고 잎만 무성하다. 호박순은 풀속에서 앞을 향해 덩굴손으로 감아쥐고 차분하게 나아간다. 불볕 더위가 여리게 자라는 첫 호박을 떼버려도 굴하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고 나아가며 마디마디 살아남을 호박을 키운다. 삶의 열정은 저토록 아름다운 것인가. 옥수수 열개 심은 것은 거름도 주지 않았지만, 이십여개 달려 먹을 수 있었다. 무엇이든 심어서 자라는 걸 보면 힘이 난다. 불볕 더위는 이들과 함께 견디는 것이다.
사람이 심은 것은 거름주고 물주고 소독해야 제대로 자란다. 그러나 풀들은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저들끼리 씨억씨억 잘 자란다. 서로 작은 그늘이 돼 주고 서로 비빌 언덕이 되어준다. 때로는 어느 억센 손에 감겨 발버둥 치지만 기어이 씨앗을 남긴다. 지구는 그리하여 더욱 아름다운 것이리라.
불볕 더위도 엄동설한도 생명을 응원하려는 것이지, 꺾기 위해 있지는 않는 것 같다.
더위를 견디고 더위 속에 익어가는 계절이다. 칠월 매미는 들어가고 팔월 매미가 바쁘게 여름 쫒는 소리를 낸다.
모두가 이겨내면 좋은 결실도 맺을 것이다.
팔월이 정열적으로 팔팔하게 가고 있다. 팔월더위에 안겨 있으면 지칠 때도 있지만 머리는 차고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나의 나이는 아직 팔월이다 마음속에 감처럼 사과처럼 대추처럼 단단해지는 열정이 익고 있는 것이다.
팔월은 개미처럼 한발한발 걷고 있는 나의 인생이다. 팔월의 볕이 나의 어깨를 한껏 달군다. 달궈진 팔의 힘으로 펜을 든다. 흐르는 시간이 잉크에 젖는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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