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꼍의 대추나무와 감나무 열매가 올망졸망 커간다. 이틀 전부터 귀뚜라미 한 마리가 집안으로 들어와 날마다 큰 소리로 가을을 부른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소리만 들릴뿐 보이지는 않는다. 가을 오는 소리를 집안에서 또렷하게 들으니 마음이 더욱 숙연해진다.
연일 후끈한 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올 여름은 폭염과 폭우가 유난히 심한 것 같다. 폭자가 기승을 부리는 올 여름에는 공과금도 폭등했다. 우리집은 작은 평수지만 8월에는 전기요금이 평소 두배 이상 나오고, 상수도 요금은 팔만원이 넘게 나왔다. 몇년 전 보다 상수도 요금은 몇 배나 더 나왔다. 남들 거의 있는 에어컨도 없고 냉장고도 싱글 냉장고인데 이상한 일이다. 나는 아주 더운 한 낮에만 선풍기 바람을 쐰다. 전기 제품이라고는 전기밥솥 싱글 냉장고 조그만 티브이 정도이다. 그런데 요금이 배가 되니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하게 된다. 다른 것은 아끼고 절약하지만 여름이면 물을 많이 쓰기는 한다. 그래도 상수도 요금이 8만원이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가족은 아들하고 둘 뿐이고 아들은 출근하면 저녁에 온다.
날씨도 푹푹 찌는데 공과금까지 폭등하니 날씨가 더욱 덥게 느껴진다.
지난 장마에 밤낮으로 폭우가 쏟아지던 날 새벽에 나가보니 길마저 온통 강이 되어 흘렀다. 폭우가 남긴 흔적은 곳곳에 남아있다. 강가에는 쓰레기 더미가 수두룩하다. 허름한 농가의 벽은 허물어져 구멍이 뻥 뚤린 집도 있다. 비어있는 우리 축사에도 빗물이 들어와 흥건했다. 단월강을 지나다보니 벌건 빗물이 다리밑까지 차올랐다. 사람들은 강가에 서서 하염없이 퍼붓는 빗줄기에 걱정이 되어 바라보았다. 다리 건너 하풍에는 물이 인가로 흘러들어 1m 정도 잠겨 수해를 입었다.
빠르게 불어난 강물에는 냉장고와 짚볼 등이 둥둥 떠내려갔다. 사람인 듯한 허연 얼굴도 떠내려가 모골이 송연했는데, 자세히 보니 마네킹이었다. 풍동이 외가지만 살면서 처음 보는 일이다. 다행히 장맛비는 단월다리를 아찔하게 차오르다 멈추었다.
다음 날 나는 단월 다리를 건너가 보았다. 그 곳에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수해 지역을 돕고 있었다. 자원봉사자 중에는 지인들도 많았지만 어린이도 있었다. 길게 줄을 서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물을 그릇에 담아 릴레이로 퍼내기도 했다. 집집마다 물이 들어와 쓸 모 없게 된, 냉장고와 집안의 집기들을 모두 밖에 내놓았다.
점심 때가 되자 자원봉사자들은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웠다. 온 몸이 땀으로 흥건한 모습이지만 밝은 표정이다. 나는 걸어서 다리를 건넜다. 제방둑까지 불어났던 물은 하룻사이에 다 빠지고 원상태로 흘렀다.
집으로 들어와 TV뉴스를 보니 축산농가의 소가 장맛비에 떠내려가는 장면이 나온다. 소들이 놀라서 큰 눈을 껌벅이며 나오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다. 매년 장마철은 긴장철이다.
장마에 놀란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인데 태풍 카눈이 온다는 재난 문자가 며칠간 이어졌다. 다행스럽게 태풍 카눈은 우려했던 것 보다는 조용히 지나갔다. 올해는 기후의 이변인지 여름을 건너는 징검다리가 너무 깊다. 자연의 위력은 인간의 힘을 나약하게 한다.
들에는 용케 견뎌낸 농작물이 땡볕아래 새 힘을 내며 익어가고 있다. 논에는 벼꽃이 피어나고 고추밭엔 고추가 빨갛게 익어간다.
몇달 전 심은 호두나무 두 개는 땅내를 맡아 잘 큰다.
고추 오이 가지 옥수수 몇개씩 사다 심었더니 실컷 따먹고 나누워 먹는다.
심은대로 거둔다는 말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심어놓으니 갈 때마다 먹을만큼 따서 먹는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막바지 여름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여름이 좋다고 말하고 싶다. 아무리 식을줄 모르는 더위도 소나기 한번씩 지나가면 열기가 조금씩 식는다.
계절처럼 나의 인생도 뜨거운 땡볕을 쬐며 지금은 바람 부는 중이다. <저작권자 ⓒ 충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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