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신옥주 | 기사입력 2020/11/02 [09:36]

"여성들이여,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신옥주 | 입력 : 2020/11/02 [09:36]

▲ 신옥주 주부독서회원 

재난 소설이나 영화를 보면 남성들이 주인공이고, 여성들은 보조 역할을 하거나 마지막까지 주인공의 도움을 받아 살아남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여성이 주인공이면 이상하게도 십대의 어리고 아름다우며 언제 배웠는지 싸움도 잘하고 강한 여성이 등장한다. 그래서 가끔은 평범하고 찌질하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책을 찾아 읽기도 한다. 지난번 가키야 미우의 책을 한번 접했던 경험이 있어 다른 작가의 책을 읽을까 생각하다가 다시 이 작가를 찾았다. ‘여자들의 피난소’는 각기 다른 3명의 여성을 통해 자연재해 속의 피난소 생활을 생생하게 담아낸 소설이다. 동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나 '해일 대피 방송'을 듣고 피난하거나 물에 휩쓸리거나 지진에 무너지는 건물에서 살아남은 세 여성이 등장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매년 홍수에 마을이 잠기는 일이 잦아 국가 정책에 따라 주민 모두 새로운 마을을 조성해 이주를 하고 살았던 마을 출신이다. 다니던 학교도 폐교가 되고 살던 집들은 모두 파괴되었다. 마지막으로 본 마을의 모습은 지붕까지 물에 잠기고 유일하게 높았던 교회 종탑만 보이는데 산에서 누런 강물에 뒤덮인 그 장면을 보며 울던 때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감상적인 편이 아니라 고향을 찾지는 않지만 그래도 마음이 쉴 곳이 없어진 기분은 항상 가슴에 남아 있다.

 

주인공은 나이가 오십이 넘어도 엄마에게 기대어 사는 남편을 둔 쓰바키하라 후쿠코, 가부장적이며 이기적인 시아버지와 시아주버니 사이에서 재난속에 남편은 죽고 6개월 아기를 둔 우루시야마 도오노, 폭력적인 남편과 이혼하고 엄마와 가게를 꾸려 초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야마노 나기사 세 명이다. 세 사람은 지진이 일어나 해일이 닥치면서 각자 간신히 살아남아 피난소로 가게 된다. 나기사의 아들을 후쿠코가 보호하게 되면서 넷이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간다. 사실 물이 마을을 덮칠 때 살아남기까지의 과정도 손에 땀을 쥐게 하지만 살았다고 해서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집과 일터를 잃은 그들은 보호자도 없이 남성 중심의 사회인 피난소에 가게 된다.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한 그녀들과 피난소 생활을 하면서 나타나는 각종 문제들은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화가 나며, 여성의 시선으로 그려낸 작가의 필력에 읽는 이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된다.

 

가족이나 다름없다며 모두 한마음으로 연대감을 갖기 위해 칸막이 사용을 하지 말자고 피난민 대표가 말한다. 말도 안되는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는 문화도 분명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본에서 끝까지 칸막이를 사용하지 않은 피난소가 있어 이것을 작가가 참고하였다고 하니 더 소름이 돋는다. 가족간에도 지켜야 할 프라이버시가 있는데 하물며 타인들과 섞여 실내체육관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칸막이도 주지 않는다는 발상은 대체 어떤 놈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냐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6개월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마다 이불을 뒤집어써야만 하는 도오노나, 젊은 여성들이 속옷을 갈아입을 때 힐끔힐끔 쳐다보는 남성들의 시선을 견뎌야하는 것은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일본 남성들의 성에 대한 집착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로구나 하며 생각하게 만드는 장면이 있다. "부녀자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72시간 내에 이 약을 복용하면 임신하지 않는다는 것 같아요. 집은 떠내려갔지, 일자리는 사라졌지, 남자들도 속이 답답할 테니, 그런 일이 생겨도 어쩔 수 없지요. 그러니까 여성 여러분, 눈감아 주세요. 남자들이란 그런 동물이니까“ 이런 글을 한국에서 썼다면 일본을 폄하한다며 난리 칠 일본인에게 일본 작가가 쓴 글이고 일본 여성들이 공감한다니 정말 친해지고 싶지 않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겪었던 일이라고 알고 있는 일이라고 짐작한 일이 모두 바뀌어 몰랐던 사실도 많이 알게 되었으며, 비상사태에서의 행동요령이나 필요한 재난준비물도 알게 되었다. 자연재해 앞에서 인간의 나약한 심리와 추악한 본성을 리얼하게 보여주는 책이며, 특히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없는 생활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여성들에게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한 책이라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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