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落書)

이대훈 | 기사입력 2020/10/22 [15:34]

낙서(落書)

이대훈 | 입력 : 2020/10/22 [15:34]

▲ 이대훈 청소년을 위한 미래설계연구소장     ©

인간이 사는 세상 어디든지 낙서가 없는 곳이 있을까? 꽤 오래전 미국여행을 갔을 때 나는 스프레이 페인트로 써놓은 낙서가 시내 여기저기 있는 것을 보고 내심 많이 놀랐다. 아니, 이 세상에서 가장 선진국인 미국에도 저런 낙서가 있다니! 그것도 시내 한복판에 여러 사람이 잘 볼 수 있는 장소의 벽에 개발 새발 낙서를 해놓았다니 나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낙서란 것은 어린아이들이 아무 곳에나 끄적거려 놓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른들이 차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시의 건물에 그것도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해 마구잡이식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놓은 것을 보고 참 선진 미국이란 나라에도 별별 사람들이 다 있구나 생각을 했다.

 

모르긴 해도 낙서는 우리 인간들이 그림과 글자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낙서를 하는 사람은 모임이나 강의 등 어떤 다른 행동에 몰두하면서 보통 책이나 원고, 종이 등의 여백처럼 예기치 않은 곳에 하게 된다. 낙서라는 뜻의 영어인 'doodle'이 널리 쓰인 것은 1936년 〈디드 씨 도시로 가다 Mr. Deeds Goes to Town〉라는 영화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면서부터이지만 실제로 낙서가 행해진 것은 물론 이보다 훨씬 더 오래전이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공책들이나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가 집필한 원고 여백에서뿐만 아니라 중세에 씌어진 원고들에서도 낙서가 발견된다. 20세기에 이르러 무의식의 발현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나아가 그것을 예술형식과 인간 본성을 이해하는 실마리로 해석하려는 욕구가 늘어나면서 낙서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졌다.

 

막스 에른스트와 살바도르 달리, 앙드레 마송은 초현실주의적 자동 데생 방식을 사용했으며, 특히 추상표현주의자인 잭슨 폴로크가 그린 일련의 그림들은 그의 심리분석에서 하나의 요소로 사용되었다.

 

일본 에도〔江戶〕시대 때 낙서는 힘없는 백성들의 항거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민초들의 소리를 적은 쪽지를 길거리에 슬쩍 떨어뜨려 놓은 것을 ‘오토미 부시〔落文〕’라 한 데서 유래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낙서가 백성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한 방편으로 조선 후기에 나타났는데, 돌이나 바위에 당시의 사회상이 낙서로 새겨졌다. 그러면 그곳을 지나다니는 보부상들이 그런 돌을 사람이 잘 다니는 산길에다 슬쩍 놓아두었고, 다른 보부상들은 그 내용을 읽고 다른 마을에 전파하거나 자기가 알고 있는 새로운 사실을 덧붙여 새겨넣기도 했다고 한다.

 

낙서는 의미 없는 글이나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어떤 의미를 부여한 낙서도 등장을 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내가 가장 의미가 있는 낙서라고 생각한 것은 아주 오래 전 모 주간지에 낙서를 모집한다는 광고(지금 생각해도 참 희한한 광고가 다 있었다.)가 난 적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여러 종류의 낙서를 응모했었는데 가장 큰 호응을 받았던 낙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신은 죽었다 — 니이체

   니이체는 죽었다 — 신 >

 

별 것 아닌 낙서 같지만 나름 철학적인 면이 엿보인 낙서가 아닐 수 없는 것이 니이체(독일 태생의 실존주의 철학자)란 철학자가 자신의 저서에서 ‘신은 죽었다.’고 설파를 했다. 그런데 그 신이 ‘니이체는 죽었다’고 한 것이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신이 있는지 또 있다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니이체란 사람이 죽은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낙서는 때로는 시대의 풍자로 때로는 욕구불만의 표출로 또 때로는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요즈음은 그림을 포함해 낙서가 예술의 한 장르로 들어오기도 했다.

 

언젠가는 술집이나 식당에도 낙서판이라는 것이 등장해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 두자 글로 자신이 그곳에서 느낀 소감을 적어놓기도 했고, 또 어떤 이는 시, 그림 등을 그려놓기도 했었다.

 

낙서가 가장 많은 공간은 아무래도 화장실이 아닌가 한다. 요즈음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화장실 특히 공중화장실의 벽면은 낙서로 빈틈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런 곳의 낙서는 대부분 성적인 것들이다. 남녀의 생식기 그림은 기본이고 때론 낯뜨거운 그림이나 글들도 있다. 때로는 정부의 잘못된 시책을 비난하는 글도 있다. 때문에 낙서는 욕구불만의 표출일 수도 있고,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아니 드러내면 어떤 위해를 당할 수도 있는 사람이 공공의 장소에 자신의 생각을 적나라하게 표시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은 낙서도 디지털화가 되어 있다. 인터넷의 댓글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댓글을 모두 낙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댓글은 인터넷에 올린 글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허나 아무런 뜻도 없는 글, 공연히 상대방을 비방, 비난하는 글, 터무니없는 가짜뉴스성 글 등은 말 그대로 쓰레기만도 못한 낙서와 다름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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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시 노은면 이레산업․해광산업, 마스크 5000장 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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