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 | 기사입력 2020/01/14 [08:56]

김영희 | 입력 : 2020/01/14 [08:56]

▲ 김영희 시인     ©

경자년(庚子年)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모두 건강한 가운데 소망이 이루어지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새해를 앞두고 지난해 25일 크리스마스 날에는 월악산영봉을 다녀왔다. 28년 전 친구들과 다녀온 후 두 번째 산행이다. 12시부터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한 나는 감회가 새로웠다. 깊은 계곡이 접하는 곳에는 산돼지가 나무뿌리를 캐느라 파인 흔적이 몇 군데 보여서 긴장하였다. 평범한 길이 끝나고 가파른 길로 접어들었다. 산을 오르다보니 점점 숨이 가빠졌다. 그럴 때마다 쉬었다가기를 반복했다. 나무사이로 하늘이 보이면 영봉이 보이는 것 같아 힘이 솟았다. 오르다 숨이 턱에 찰 무렵 잠시 쉬다보면 산에 사는 생명들의 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나무 밑에 앉아 숨을 고를 때는 톱밥 같은 게 비처럼 떨어졌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것이었다.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는 조용한 山寺의 목탁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딱따구리의 소리를 오랜만에 들으니 머리가 맑아졌다. 딱따구리의 뇌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떤 충격 완화장치가 있기에 단단한 나무를 그렇게 쪼아도 괜찮은 것일까. 월악산 딱따구리는 따다따딱 따다따딱 딱딱 토르르 소리처럼 들린다. 딱따구리는 어떻게 1초에 10여회 이상 나무를 쪼고, 하루 만 번을 넘게 쪼아도 뇌가 멀쩡한 것일까. 연구대상인 딱따구리를 생각하며 절반을 올라갔다. 그런데 이번엔 고라니가 깊은 계곡에서 쾌우 쾌우 하며 괴성을 질렀다. 하산하는 사람이 더러 보이는 가운데, 산에 올라가는 사람은 혼자여서 은근히 긴장되었다.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다시 올랐다.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저 멀리 영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서너 사람이 내려가다가 혼자 올라가는 나를 보고 걱정 어린 목소리로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건넨다.

 

마음이 급해졌다. 산돼지도 산꼭대기에는 먹을 것 없고, 굴러 떨어질까봐 올라오지 않겠지만, 내려갈 일이 걱정이었다. 3시가 넘은 가운데 영봉이 가까이 보인다. 영봉이 눈앞인 것 같아도 몇 고비를 더 넘어야 했다. 영봉이 가까워지면서 가슴이 벅차지기 시작했다. 나는, ‘월악산님 나를 받아줘서 고마워요’라는 말을 했다. 마지막 고비를 넘을 때는 눈과 얼음이 남아있어서 더 조심했다. 마치 인생의 살얼음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군데군데 얼음이 보이는 마지막 계단을 힘겹게 올라, 드디어 월악산 영봉에 다다른 것이다. 영봉에서 내려다보니 노을빛에 물든 겨울 산주름이 무척 아름다웠다. 해는 서산에서 어서 내려가라고 나를 재촉한다. 월악산영봉에서 하늘을 보니 부모님 생각이 났다. 부모님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 생각지 못한 불효를 깨닫게 되었다. 영봉에는 까마귀 한마리가 깨달을 각(覺)처럼 가악 가악 소리를 냈다. 불효를 겨우 깨달으며 아쉬운 영봉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 뼘 정도 남은 해는 나보다 바쁜 듯 내려앉는다. 이제부터는 속히 내려가는 일에만 집중해야 5시 안에 월악산을 벗어날 것이다. 올라갈 때 들리던 딱따구리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날은 어두워지는데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다. 가파른 내리막인데 벋정다리처럼 다리가 구부러지질 않는다. 튕겨 나갈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올라가는 일보다 내려가는 일이 더 힘들다. 사느냐 죽느냐 기로에 선 것처럼 나는 엉금엉금 기를 쓰고 내려왔다. 손을 짚고 뒤로 내려오다가 겨우겨우 내려오기를 반복하다보니 길마저 어스름해졌다. 영봉에서 내려오는 동안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큰 산을 넘은 나는 어려운 산행을 마치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후유증으로 아프던 다리는 5일 지나니 괜찮아졌다.

 

나이 한 살 거저먹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미안해서 도전했던 월악산영봉이다. 월악산영봉을 무사히 마치고 새해를 맞이했다. 새해 첫날에는 청와대 앞에서 새해 첫날 아침에만 칠 수 있는 대고각(신문고)을 세 번 치면서 시작했다. 그리고 가루눈을 맞으며 하얀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 청와대 뒤 백악산을 넘었다. 백악산(북악산)을 넘으니 길상사가 보인다. 길상사에서 새해 떡국보다 먼저 맛보는 백석의 시를 만난다. 법정스님의 맑은 발자취를 만난다. 눈 그치고 하늘 맑아지고 한 고개 넘으며, 새해에는 내 자신에게 신문고를 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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