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목숨만큼 널 사랑해

박상옥 | 기사입력 2019/10/01 [09:04]

내 목숨만큼 널 사랑해

박상옥 | 입력 : 2019/10/01 [09:04]

 

내 목숨만큼 널 사랑해

 

                                       우명희(1953 ~ )

 

처음에 그는 막연한 기다림이었는데

어느 날 예고도 없이 달콤한 설레임으로

그가 내게로 다가와 품에 안겼다

 

나와 인연인 것일까 필연인 것일까

첫사랑처럼 떨리게 하고

십자가 아래 살포시 기도하게 하고

자애롭고 관대한 미소 함께 수다쟁이로 만들었다

 

그를 향해 온전한 내 사랑의 집착이 시작되었다

그저 바라만 보아도 수시로 가슴이 뭉울뭉울 하니

돌아서면 미소 짓게 하고 돌아서면 그리워 안달이 난다

남은 생애 내 모든 희망이 되어버린

손주!

 

 

▲ 박상옥 시인     ©

어느 가을날이었다. 할머닌 꽃밭에 과꽃을 한 아름 꺾어 들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증조할머니를 보고 냅다 문 앞으로 보행기를 달려드는 증손주에게 할머니는 과꽃을 안겨주셨다. 그 풍경을 본 나는 허공이 쓱 베어지고 놀란 마음에 핏방울이 졌을까? 증손주가 양손을 흔들어 꽃잎을 떼어내며 꽃 부스러기로 방을 어지럽히는 동안, 지극히 자애로운 웃음으로 바라보던 할머니를 나는 미워했다. 할머니께 손녀들이 가꾼 꽃이란, 귀한 손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격하여 차갑기만 한 집안공기를 따습고 환하게 했던 꽃밭. 아버진 그걸 아시고 꽃밭을 가득 꽃을 심었다. 당신 어머님 밑에서 늘 기죽어사는 딸들에 대한 배려였으리라. 우리는 매사가 우리 향한 할머님의 심술이라고 단정했다.

 

할머닌 “책 보지 말고 바느질이나 해라. 놀지 말고 마루나 닦아라. 고추장 된장 잘 담가야 집안이 넉넉하다. 두부 만들고 엿 졸이고 제사차례를 잘 익혀라 여학생 교복이 한복이 아니라니 쯧쯧…” 추상같은 잔소리에 질려서 누구든 할머니를 피했다. 손수 저고리를 지어 하얀 학처럼 입고 앉아 책만 보시던 할머니의 얼음표정이 달라진 건, 증손주을 보고 난 후부터였다.

 

모든 사람이 제 힘껏 사랑을 사는 인생일지라도, 첫사랑처럼 떨리게 하고, 기도하게 하고, 자애롭게 만들고, 수다쟁이로 만들고, 사랑의 집착이 시작되었다고 고백하게 하고, 바라만 봐도 울렁증이 나도록 좋아 죽겠는 손주 사랑에 어느 얼어붙은 가슴인들 녹지 않겠는가. 목숨을 걸 만큼 사랑해도 후회 없는 손주 사랑은, 사랑 중에서 미움 없는 유일한 사랑. 나도 울 집에 가죽 얇고 털 없는 옷을 입혀 젓을 물리는 사랑을 모시고 싶다. 사랑만으로 충분치 않은 사랑이라면, 온 몸으로 내어주는 일상의 사소함으로 내리사랑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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