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통 속엔

박상옥 | 기사입력 2019/08/08 [12:16]

벌통 속엔

박상옥 | 입력 : 2019/08/08 [12:16]

[특집] 탄생 100주년 기념 권태응 대표 동시 50선(46)

 

 

벌통 속엔

 

                        권태응

 

벌통 속엔 벌통 식구

오골오골 살고

애기 낳고 맘마 먹고

자장하고 일하고

 

개미굴엔 개미 식구

오골오골 살고

애기 낳고 맘마 먹고

자장하고 일하고

 

쥐굴 속엔 생쥐들이

오골오골 살고

애기 낳고 맘마 먹고

자장하고 일하고

 

* 권태응(1918~ 1951) 충주출신 시인이며 독립운동가

 

▲ 박상옥 시인     ©

권태응의 동시에서 토속어의 구수함을 맛보는 것은 동시 읽는 기쁨을 배가시킵니다. 번식하여 일가를 이루는 씨갑(씨앗)들, 빨강빨강 앵두가 '오볼조볼'(작은 열매 따위가 많이 매달려 있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 벌집에 벌들이 '오골 박작'(작은 벌레나 짐승, 사람 등이 한곳에 빽빽하게 많이 모여 자꾸 움직이는 모양) 등등, 동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애기 낳고 맘마(밥)먹고 자장하고(잠자고) 일하며 살아가는 풍경이 동물들이나 사람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벌통 속엔 벌통 식구들이 오골오골살고 있으며, 쥐 굴속엔 생쥐들이 오골오골 살고 있으며, 개미굴엔 개미식구가 오골오골 살고 있어서 정겹습니다.

 

동시들이 재미있게 일러줍니다. 온갖 생명들 곁에서 우리들도 아등바등 에헤라 둥둥 시끌시끌 복작복작 살고 있음을 말입니다. 권태응 선생님 탄생 101주년을 넘어서는 지금 문단은 동시에 대한 관심이나 성원이 유난히 뜨겁습니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동시세계가 순수문학으로 내내 남아있으면 좋겠습니다. 몇몇 힘 있다고 자부하는 작가들의 욕심으로부터 부디 자유롭게 잘 자라서 세계로 쑥쑥 뻗어나갔으면 꿈나무면 좋겠습니다.

 

“퍼진다 꽃들은 / 씨갑으로 퍼진다 / 해마다 해마다 자꾸자꾸 // 퍼진다 물고기는 / 알을 낳고 퍼진다 / 해마다 해마다 자꾸자꾸 / 퍼진다 짐승들은 / 새낄 쳐서 퍼진다 / 해마다 해마다 자꾸자꾸”(p351. 자꾸자꾸 퍼진다),

 

“퍼진다 퍼진다 / 씨갑으로 퍼진다/ 채송화 백일홍 얼마든지 있구 // 퍼진다 퍼진다 / 열매로 퍼진다 살구에 복숭아 얼마든지 있구 // 퍼진다 퍼진다 / 뿌리로 퍼진다 / 함박꽃 국화꽃 얼마든지 있구”(p.336. 퍼진다 퍼진다)

 

사람들은 무리지어 가족을 이루고 가족은 무리지어 민족을 이루고 국가를 이루고.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 식구가 있습니다. 권태응은 살아있는 생태 속, 살아가는 모양을 살피는 것에 유난한 관심을 동시로서 표현하였으니. 번식하는 세상의 모든 씨앗들, 번식하는 모든 물고기들, 번식하는 모든 뿌리들, 번식하는 모든 열매가 사는 풍경을, 생생하게 읽어서 남겨주셨습니다. 우리는 동심망원경에 읽히고 관찰되어지는 해맑은 의미망이, 거룩한 자연애로부터 온다는 것을 배웁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은 혼자서만 잘 살아지는 게 결코 아니라는 순수한 열망을 가르쳐 주시는 권태응 선생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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