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에 가신 할머니

박상옥 | 기사입력 2019/04/26 [15:55]

장에 가신 할머니

박상옥 | 입력 : 2019/04/26 [15:55]

[특집] 탄생 100주년 기념 권태응 대표 동시 50선(35)

 

 

장에 가신 할머니

 

                           권태응

 

할머니가 장엘 가셨어요.

미역 사러 장엘 가셨어요.

 

머잖어 엄마아기 *낳면은

김 무럭 맛나게 끓여준대요.

 

할머니가 장엘 가겼어요.

기름 짜려 장엘 가셨어요.

 

몸 풀고 엄마 국밥 먹을 때

*도옹동 꼬수게 쳐준대요.

 

 

*권태응(1918~ 1951) 충주출신 시인이며 독립운동가

*낳으면. 동동. 고소하게

 

 

▲ 박상옥 시인     ©

어린 시절 60~70년대만 해도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미역, 멸치, 대바구니, 꿀, 바느질 소품을 팔러 다니던 방물장수나 보따리장수가 있었다. 장수들이 때 맞춰 오지 않으면 장엘 가야하는데, 장에 가는 것은 바쁜 중에 무엇이든 꼭 필요한 것을 사러가는 특별한 일이었으니, 가족 중에 누군가 장에 가는 까닭이 반드시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장엘 가셨어요. / 미역 사러 장엘 가셨어요. // “할머니가 장엘 가셨어요. / 기름 짜려 장엘 가셨어요.” 이렇듯 할머니가 장엘 가신 이유는 엄마가 동생을 낳고 먹을 미역을 사기위한 것이고, 미역국에 고소하게 넣을 참기를 짜기 위한 것이라야 했다.

 

권태응 동시를 통해 만나는 이런 풍경은 이미 잊힌 이야기가 아니다. 방앗간에서 기름을 짜고 장엘 가서 미역을 사 먹던 풍경은 아직 우리들 이야기다. 나 어린 시절에 새언니가 산달이 되자 할머닌 미역 사러 장엘 가셨고, 미역국에 넣어 먹을 참기름을 짜러 방앗간엘 가셨으니 아주 사라진 동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나 아직 새댁일 적에 손주가 보고 싶어 한달음에 사돈집에 오셨던 시아버님 손에도 둘둘 말린 미역 한 뭇이 들려 있었으니 그리 오래 된 이야기가 아니다. 또한 빨래하는 우물가만 수다 방이 아니었으니, 방앗간도 수다 방이어서 깨소금만치나 고소한 이야기가 마을과 마을을 건너 회자되게 만들었던 것이 방앗간이고, 우리가 아직 재래시장 주변으로 남아있는 방앗간을 만나면 정겨운 이유다.

 

고추를 심어야 고추를 얻고 깨를 심어야 기름을 먹던 시대가 언제였던가. 이젠 떡도 사 먹고 기름도 사 먹고, 무엇이던 사 먹는 시대이니, 어쩌다 외식이란 시절도 번개처럼 지나 와 이제는 모든 것을 사 먹는 시대가 되었다.

 

향수를 찾아서 5일장엘 가면, 재래시장을 살려보겠다고 주차공간을 늘이고, 찻집을 만들고, 대형마트도 하루 쯤 쉬는 노력이 보이고. 충주 자유시장이 행정안전부의 야시장 공모사업에 선정돼 총 사업비 10억 원을 지원받게 됐다니 축하 할 일이지만, 출산율이 줄고, 재래시장을 추억하는 어르신 인구가 줄고, 이래저래 줄어들고, 사라지는데, 과연 ‘누리야시장’이 근본적인 대책이 되어 될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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