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의 불편함

김영희 | 기사입력 2018/01/24 [09:42]

시차의 불편함

김영희 | 입력 : 2018/01/24 [09:42]
▲ 김영희 시인     ©

시간이 미끄럼 타듯이 빠르게 간다. 세월이 빠르다는 게 느껴진다. 그것은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아지기 때문일까. 짧은 한낮의 겨울 햇살이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걸어서 사는 시간이 삶에 알맞을 리는 없을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달려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달리는 것도 느려서 차를 타고 고속으로 달린다. 그리고 최고속도 305km/h로 달리는 KTX로 달린다. 거기다 지구상 아무리 먼 곳이라도 더 빠른 비행기로 다닐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전달해주는 것은 카톡 만큼 빠른 것도 없다. 나는 1년 내내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 놓는다. 그러다보니 전화가 와도 늦게 확인할 때가 종종 있다. 소리를 키워 놓으면 연실 카톡 카톡 소리에 신경이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카톡 소리뿐 아니라 밴드에서 보내는 문자 소리와 문자오는 소리, 전화벨 소리까지 일일이 다 확인하려면 정신이 없다. 요즘은 단체 카톡이 늘어나면서 개인 카톡은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까지 보내는 카톡에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2016년 어머니와 여동생 그리고 올케와 조카까지, 4명이 브라질로 가는 바람에 생이별을 한지도 2년째이다. 그 먼 곳에서 유일하게 소통하는 것이 카카오톡이다. 전화도 카톡으로 한다. 그 곳에서 사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는 것도 카톡이고 동영상을 받는 것도 카톡이다. 그러나 너무 멀다보니 카톡 통화를 해도 잡음이 심해서 반만 알아듣는다.

여동생에게는 만기가 다 돼 가는 건강보험 하나가 있었다. 그런데 외국에 살다보니 해약하려해도 불편한 점이 많다고 한다. 카톡 전화로는 해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 전화 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전화를 하려면 30분 거리에 있는 한인 마을 사무실 가서 070번호로 전화를 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특별히 부탁을 해야 된다고 한다. 문제는 시차가 12시간이기 때문이다. 한국 시간으로 10시면 브라질은 밤 10시라서 그 시간은 다 불 끄고 잔다고 한다. 그래서 특별히 부탁을 해도 30분 밤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한다. 밤길을 차 없이 걸어가다 보면, 이름 모를 짐승들과 여우도 만나고 늑대도 만나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날은 특별히 마을에서 차로 태워다 줘서 다녀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게 금융기관과 통화를 했어도 통장을 쓸 수 없게 돼 헛수고가 되었다. 더군다나 외국 오지다보니 낯선 길을 다니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동생이 브라질 가면서 쓰고 있던 통장을 거의 정리하고 혹시 몰라 하나는 남겨두고 갔다. 그러나 그것마저 해지된 통장이었다. 그래서 마침 한국에서 다니러 간사람 인편으로 통장을 보낸다고 했다. 그러면 공항으로 마중 나가서 통장을 받아 바로 사용하고 통장을 보내려고 했지만 그것도 허사였다. 통장이 살아있어도 국내에서 해당 금융기관과 거래실적이 있어야 입금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그렇게 일이 흐지부지 됐다. 처음으로 겪는 시차의 불편함이다.

어떤 날은 무의식중에 브라질로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브라질은 한밤중인 것이다. 어느 날은 자다가 카톡이 와서 보면 브라질은 한낮인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우리 가족은 밤낮이 바뀐 채 서로 하늘을 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을까. 우리 부모님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종교를 가지셨다. 평생 믿음 하나로 사셨고 자녀교육도 믿음으로 키우셨다. 지금 브라질에도 종교를 따라 가셨다. 지금도 그 종교에 소속된 사람들은 계속 브라질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그 마을은 그 종교인들만 사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살기에 따듯하고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끼리 사니까, 편하고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이별을 한 우리 형제는 늘 걱정이 앞선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가고 싶어도 쉽게 갈 수 없는 너무 먼 나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부모 형제라 해도 종교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찾아간다 해도 서로 불편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의 힘은 생각보다 큰 것 같다. 재물의 욕심도 없고 나이를 뛰어넘으며 가족의 멀어짐도 과감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본 가족의 종교다. 부모님은 평생 채식주의자셨다. 육류는 물론 자극적인 고춧가루나 마늘도 멀리 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늘 절에서 먹는 음식처럼 먹었다. 바다에서 나는 모든 생선조차 멀리 했다. 그런데도 이상한 것은 치과나 안과 외에는 병원에 간 적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청정 지역에서 나는 산나물과 산물을 마시며, 천국을 갈망하는 순수한 마음하나인 것이다.

오로지 어머니에게는 하늘도 하나 땅도 하나인 것이다.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가족을 위한 어머니의 기도는 아무리 멀어도 들리는 듯하다.

오늘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남긴 마지막 한 마디가 생각난다. ‘하나님은 마음속에 계신다.’

성경대로 믿고 가족을 지키셨다. 그래서 사는 동안 구름타고 천사의 나팔소리 들으며, 가족을 구원하여 천국에 갈 줄로 기대하셨다. 그러므로 생이 다하도록 이루어지지 않은 실망감에서 남긴 유언인 것이다. 아버지의 허탈해 하는 보이지 않는 그 날의 한숨 소리를 나는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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