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도 시대를 반영한다

신옥주 | 기사입력 2017/03/14 [09:02]

농담도 시대를 반영한다

신옥주 | 입력 : 2017/03/14 [09:02]
▲ 신옥주 주부독서회원     ©

농담이란 남을 놀리거나 웃기기 위해 실없이 하는 장난말이나 우스갯소리를 이르는 말로, 살면서 농담 한마디 하지 않고 사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때로는 농담이 있는 그대로의 말이나 진지한 이야기에 비해 보다 다양한 뉘앙스를 내포하여, 더 신선하게 들리기도 하고, 에둘러 이쪽 뜻을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데도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예로부터 재치 있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농담도 잘했으며, 근래에는 재치 있는 말을 잘하거나 웃기는 사람을 이상형으로 꼽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농담은 해도 될 때와 해서는 안 될 때를 잘 구별해야하며, 자칫 지나쳐서도 안 된다. 조선의 학자 유중림은 그의 저서에서 친한 친구 사이라도 버릇없이 함부로 농담을 주고받아서는 안 되고, 서로 온화하고 겸손하며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저술했다. 술잔을 주고받을 때, 대화를 나눌 때, 행동하고 거처할 때 모두 함부로 농담을 던져 마음속에 노여움이 자라도록 해서는 안 된다며 농담을 조심하라고 이른다.
작가 밀란 쿤데라는 그의 처녀작 ‘농담’에서 생각없이 함부로 하는 농담의 무서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배경은 1940년대 후반 체코에 공산혁명이 일어나고, 모든 것이 혁명적 이데올로기를 띄며 개인의 사상보다 국가의 이념이 우선시되던 시대였다. 주인공 루드빅은 우리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젊은이였다. 그는 마음에 드는 여자 마르게타가 공산당 여름캠프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 그녀를 놀려 주려고 편지 말미에 농담처럼 한 문장을 적어 보냈다. 농담처럼 보낸 편지 한 통이 재판에 회부되면서 반역자로 지목되고 순식간에 인생의 항로가 뒤바뀌게 된다. 재판정에서 농담이었을 뿐이라고 얘기해도 믿어주지 않았고, 루드빅은 당에서 제명되고 학업도 계속할 수 없게 된다. 15년이 지나 자유로워진 루드빅은 자신의 처지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든 자를 찾아 복수하지만, 복수는 희극적으로 어긋나고, 삶 자체가 농담이며 우리는 그 농담 속에서 살아가야함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루드빅은 과거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런 말을 한다. “그렇다면 그 시절의 나는 정말 누구였을까?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아주 정직하게 대답하고 싶다. 나는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가면을 쓰기도 했고 더 나이가 든 척해 보기도 했고,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두는 척, 높은 곳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척했으며, 내 살갗 아래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방탄도 되는 제2의 살갗이 있는 듯이 굴었다. 농담이 그런 거리를 분명하게 표현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누구에게나 이런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진지하고 항상 진실된 말만 하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루드빅 같은 경우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인데 농담 한 마디로 인생이 바뀌어버린 루드빅은 너무 가혹한 벌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이런 시절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격동의 현대를 보낸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 불과 얼마 전 일이다. 가끔은 요즘도 제 의사를 표현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이런 시대이므로 적극적으로 자기의 입장을 제대로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밀란 쿤데라는 ‘사람이 이제 역사의 바깥에 머물러 있거나 역사의 발굽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역사를 이끌어나가고 만들어나가는 그런 시대를 우리, 바로 우리가 여는 것이라는 그런 환상이 있었다.’ 라고 말한다. 소설에서는 환상일수 있지만 우리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국민의 목소리가 하나로 모여 드는 지금, 농담처럼 했던 이상을 진실이 될 수 있게 변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몫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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