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냇저고리

김영희 | 기사입력 2017/03/08 [09:10]

배냇저고리

김영희 | 입력 : 2017/03/08 [09:10]
▲ 김영희 시인     ©

어느덧 양지바른 곳에는 제비꽃이 피어나고 파릇파릇 앙증맞은 새봄이 돋아난다. 추운겨울을 견디고 돋아나는 새싹들은 봄이면 언제나 천진하다. 여리게 올라오는 생명들을 보면 갓 태어난 아기 같이 예쁘다.
지난 가을, 일산 사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친구는 배냇저고리 만드는 강의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좋은 기회다 싶어 그러자고 했다. 배내옷은 아기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세이레 동안 입는 옷이다. 배내옷은 배안의 저고리라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그런 배내옷을 직접 만들게 되다니 설레기까지 했다. 강의첫날, 도착해보니 미리 재단하여 준비된 배냇저고리는 듬성듬성 시쳐 있다. 그리고 자리마다 침선세트가 하나씩 놓여 있다. 강의는 재료비 없이 정부의 지원으로 마련되었다. 강사는 고궁박물관 등에서 강의하는 김숙자 강사였다. 배냇저고리는 미리 시쳐 있는 선 따라 꿰매기부터 배웠다. 바느질은 촘촘하고 가지런하게 매듭이 없게 하였다. 정성으로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다보니 슬며시 감동이 되었다. 살다보면 이런 날도 오는구나 싶어서였다. 이렇게 만든 배냇저고리를 앞으로 태어날 손주에게 입힐 생각을 하니 행복해졌다.
바느질하다 질문을 하면 강사는 와서 친절하게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나는 작고 하얀 옷에 때라도 묻을까 염려되어 바느질하면서 손을 자주 씻었다. 겨우 밑단 한 줄 꿰매는데 두 시간이 흘렀다. 첫 실습은 그렇게 끝났다. 강사는 쓰던 실과 바늘을 가지고 가서, 앞면 두 줄은 집에서 해오라는 숙제를 냈다.
집에 오자 황병기의 가야금 독주 침향무를 틀었다. 자리를 말끔하게 준비하고 앉았다. 그리고는 시쳐 놓은 선 따라 얌전히 바느질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여자다운 모습이 느껴졌다. 여자는 여자다운 일을 할 때 여자다워지는 걸까. 슬며시 어린 날이 떠올랐다. 이불홑청을 빨아 풀을 하고 다듬이로 펴서 듬성듬성 호던 어머니 생각이 났다. 가끔은 풀을 먹인 홑청의 두 귀퉁이를 어머니와 잡고 잡아당겼다. 그럴 때는 어머니도 나처럼 장난기 서린 즐거운 안색이 되었다. 그런 날 밤이면 새물내 나는 이불이라 기분이 좋았다. 요즘은 바느질 할 일이 별로 없다. 어쩌다 단추가 떨어지면 바늘을 들게 되지만, 옷이 타지면 세탁소에 맡기게 된다. 손으로 어쩌다 꿰매면 어설픈 표가 나고 쉽게 타진다.
일주일 뒤 두 번째 강의는 배내옷을 마무리 하는 날이다. 2시간을 가르쳐 주는 대로 열심히 따라하니 옷이 되어갔다. 바느질하다가 옆구리 중간쯤에 손가락 반 정도는 건너뛰었다. 바느질을 마친 후 건너뛴 그 곳에서 옷 전체를 뒤집기 했다. 뒤집고 나니 꿰맨 솔기는 속으로 들어가고 배냇저고리가 예쁘게 완성되었다. 뒤집은 부분은 바늘땀으로 감침질해서 마무리했다. 순전히 손바느질로 만든 배냇저고리어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툰 첫 솜씨로 만든 것이지만 입힐 수 있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실끈을 달았다. 실은 언제나 매듭이 없어야했다. 친구 덕분에 배냇저고리를 만들게 되었지만, 친구는 마지막 강의에 나오지 못해 완성하지 못했다. 강의가 끝나고 강사와 수강생들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여담을 나눴다.
그렇게 만든 깃저고리를 고이 간직해오다가, 지난 2월 16일 외손자가 생겨 입혀보았다. 내가 만든 배내옷을 입은 아가의 모습은 더욱 감동이었다. 예전에는 아들을 낳으면 금줄에 숯과 빨간 고추를 달고, 딸을 낳으면 숯과 생솔가지를 간간이 꽂았다. 요즘은 병원에서 낳다보니 사라져가는 문화가 되었다. 또한 아기가 생긴 집에는 마당에 기저귀가 널려 하얗게 눈부셨다. 요즘은 일회용기저기로 대신하니 편리해졌지만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손주가 생기니 할머니 된 것을 축하한다는 인사를 많이 받는다. 주위에서도 손주 보았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지인들의 대부분은 손주가 생기자마자 손주의 사진을 카톡의 프로필 사진으로 올린다. 아마 나이 드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손주 생기는 것은 좋아하는 것 같다. 살면서 자식이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각을 깊게 만든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가정과 사회가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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