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충주금융조합

전홍식 교통대학교 한국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 기사입력 2016/09/07 [08:53]

일제강점기 충주금융조합

전홍식 교통대학교 한국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 입력 : 2016/09/07 [08:53]
북문네거리에서 보문당을 끼고 좌편으로 돌아가면 농협은행 충일지점을 만날 수 있다. 외관상으로 보면 평범한 농협 건물과 다를 바 없지만 농협은행 충일지점의 발자취를 따라 지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식민지 금융침략의 첨병이자 하위 말단조직인 충주금융조합을 만날 수 있다.
금융조합의 설립은 조선경제가 식민지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의 일환이었다. 1904년 8월 22일에 체결된 제1차 한일협약에 따라 재정고문이 된 일본인 목하전종태랑(目賀田種太郞)은 화폐정리사업과 재정기구의 개편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조선의 전통적인 금융기구가 붕괴되고 금융경색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조선의 경제위기를 일제는 식민지 금융침략의 기회로 이용하였다. 조선의 전통적인 금융기구를 대신할 식민지적 금융기관으로 한성공동창고회사, 농공은행 등이 설립되었다. 지방금융조합은 농공은행을 보조하여 농촌의 금융경색을 완화하고 점차 확산되고 있던 의병투쟁으로부터 농민을 차단하기 위해 1907년부터 전국 각지에 설치되었다.
지방금융조합의 설립지역과 관할 구역은 1907년 7월 11일 개정된 탁지부령 제26호 『관세관 위치 및 관할구역』에 의해 일률적으로 정하였다. 금융조합은 세무관 소재지에 설치하게 되어 있었다. 충주금융조합은 1909년 7월 통감부의 설치 허가를 얻어 같은 해 9월 충주와 청풍을 관할구역으로 하여 설립되었다.
금융조합의 설립이 순탄하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금융조합을 설립하여 농촌을 통제하고 경제적으로 수탈하려는 일제에 대항하여 전국적으로 농민들의 항거가 이어졌다. 1907년 군대해산이후 전국 각지에서 의병항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어 설립초기 금융조합은 어려움에 처하였다. 일제의 침략정책의 일환으로 설립된 각종 금융기관과 관련된 친일 조선인이 의병의 공격대상이 되면서 조합원 모집 등 활동이 어려워졌다. 일제는 금융조합 설립위원에게 모집인원을 할당하여 조합원을 강제로 모집하기도 하였다.
1910년 병탄이후인 1914년의 <지방금융조합령>의 제정, 1918년과 1929년의 <금융조합령>의 개정으로 금융조합의 기능과 역할이 강화되었다. 충주금융조합은 1917년 3월 청풍금융조합이 설립됨으로 충주군 일원으로 관할구역이 조정되었다. 1919년 8월에는 엄정, 산척, 소태, 가금의 4개 면을 조합구역으로 하여 목계금융조합이 설립되었다. 1921년에는 이류, 신니, 주덕의 3개 면을 조합구역으로 하여 대소원금융조합이 설립되었다.
금융조합은 조합장, 이사, 감사, 평의원으로 구성되었고 의결기관으로는 총회와 평의원회가 있었다. 이사는 조합을 대표하였고 조선총독이 임명하였다. 충주금융조합 이사장을 역임한 오소금오(奧小金吾), 실야희대작(失野喜代作), 송하각치(松下角治) 등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위한 관료양성기관인 대만협회 전문학교 또는 동양협회 전문학교 출신이었다.
조합장은 총회에서 조합원의 선거에 의해 선출되었으며 지방장관의 승인받아야 했다. 충주금융조합의 초대 조합장 정운하는 농업에 종사하고 기호흥학회 회원이였으며, 2대 조합장 구형조는 전 육군참위이며 기호흥학회 회원이었다. 3대 조합장 윤우영은 사립 용명학교를 설립하고, 신니면장을 역임하였다. 제4대 조합장 조대연은 엄정면장, 면협의원, 도평의원을 역임하였고, 제5대 조합장 이완재는 충주면장을 역임하였다.
총독부는 지방의 유력자들을 조합장으로 임명하여 적극 활용하였고 이들 조합장들은 일제의 식민지배 정책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자신들의 이권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한대석, 정일, 이기하, 이석연, 유석희, 유석원 등의 평의원도 면장, 면협의원, 도평의원을 역임한 자들로 식민권력과의 유착관계를 바탕으로 성장한 식민지배의 적극적인 협력자였다. 일제강점기 금융조합은 식민지 경영의 첨병인 일본인 이사와 지역유력자의 결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금융조합의 역할과 기능은 해방 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고 유지되었다. 일제시기 조선금융조합연합회는 해방이후 대한금융조합연합회로 명칭만 변경되어 이승만정권의 농촌통제기구로 이용되었다. 1956년 농업은행으로 개편되었다가 5.16쿠테타이후인 1962년 농협중앙회로 개편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외부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포토뉴스
조길형 충주시장, 2024년 갑진년 새해 충혼탑 참배
1/19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