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함께 읽고 싶은 詩

강준희 | 기사입력 2014/10/21 [13:58]

가을에 함께 읽고 싶은 詩

강준희 | 입력 : 2014/10/21 [13:58]
▲ 강준희 중산고 교사     ©
가을이다. 맑고 높푸른 가을 하늘 아래 서 있으면 눈물겹도록 세상이 아름답다. 황금빛으로 흔들리는 들판의 벼이삭들을 바라보는 농부의 미소도 아름답고 사과나무에 매달린 빨간 사과도 맑고 투명하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잎과 노오랗게 물든 은행나무 가로수길을 걷노라면 왠지 모를 쓸쓸함이 더해져 낭만적인 분위기에 휩싸인다. 누구나 인생은 외롭고 쓸쓸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 아름답고 쓸쓸한 가을에 생각나는 시는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 이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中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백석이고, 백석 시인의 탁월한 감성을 가장 잘 드러난 시가 ‘흰 바람벽이 있어’라고 평가를 하니, 이 구절이 우리나라 시 중 최고 절창 중 하나라는 생각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닐 듯하다. 시인은 이루지 못한 사랑과 불우한 삶으로 인해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시인은 가슴 속에 가득찬 정열과 쓸쓸함 그리고 사랑과 슬픔을 이렇듯 표현하였고, 고고한 정신세계를 지향했다.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 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中
 
시인은 주어진 시련과 고난이 어떠하든 간에 고고하게 서 있는 갈매나무처럼 자신의 고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겠다는 다짐을 엿볼 수 있다. 이 가을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백석의 시를 읽으며 함께 만끽하고 견디며 고고하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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