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생이 오늘의 삶을 밀어간다

강준희 | 기사입력 2014/03/03 [09:59]

지난 생이 오늘의 삶을 밀어간다

강준희 | 입력 : 2014/03/03 [09:59]
▲ 강준희 중산고 교사     ©
가끔씩 아주 옛일이 선명하게 떠오를 때가 있다. 많은 경험 중에서 잊히지 않고 마치 어제일처럼 또렷하게 기억되는 일이 있다. 아주 사소한 일인 듯하면서도, 그보다 중요한 일도 다 잊고 사는 데 몇 가지 일들이 나의 뇌에 각인되어 있어 가끔씩 떠오르는 일이 있다. 이를테면 아주 어렸을 적 눈내리는 밤, 잠에서 깨어보니 우리가 살던 단칸방에 어린 삼남매만 남겨져 있던 일, 형과 여동생을 깨워 엄마를 찾아 온동네를 헤매다 못찾고, 늦은 밤까지 눈을 치우며 엄마를 기다리던 일, 마을 골목길의 가로등 아래에 하얗게 쏟아져 내리던 그 눈이 없었다면 그날밤은 엄청 공포스러웠을 것이다. 그때 아버지는 원양어선을 타고 먼 남태평양의 바다 어디쯤으로 가서 안계시던 때였다. 생각해 보면 모두가 가난했지만 특히 우리가 더 가난했던 듯한데, 배를 곯았다거나 크게 불편했던 기억은 없는 걸 보면 엄마가 자식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을지 생각이 된다.

긴긴 겨울밤 엄마는 나에게 신세한탄 삼아 지난 일을 이야기해주곤 했다. 내가 아주 어려서 하반신 화상을 입어 병원에서 살아날 가망이 없다고 하여 아버지가 하는 수 없어 그냥 집으로 데리고 오면서 약한번 쓰지 못하고 자식 죽인 한은 없도록 하자고 약국에 가서 화상 연고를 잔뜩 사가지고 와서 발라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아이는 너무 고통스러워 하고 뾰족한 방법이 없이 너무도 절망스러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을 찾았다고 한다. 무당은 신령님께 제를 올려야 한다고 하여, 가난한 처지이기에 제사상을 손수 정성껏 차려서 밤 열 두 시 고개 정상에 올라가 제를 올렸다고 한다. 제를 올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이었는데, 아이가 며칠만에 처음으로 웃으며 엄마를 바라보았고, 그 길로 거짓말처럼 나아지기 시작하더니 살아났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 엄마가 제사상을 머리에 이고 어둠과 공포 속에서 고개를 오르는 모습이 자꾸 상상되곤 한다. 20대 중반의 젊은 여성의 몸으로 그 야심한 밤에 혼자서 고개를 올랐을 엄마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가슴이 아리다. 그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 미신이나 점 등 무속신앙에 대해서도 은근히 호의적이고 신뢰를 하게 되었고, 자식에 대해 헌신적인 부모님에 대해 늘 고마워 했었음에도, 다 커서 결혼 전 엄마랑 말다툼을 하며, 엄마가 해준 게 뭐 있냐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야기하던 일들도 가끔 떠오르며 낯이 벌개진다. 대학을 가기 위해 집을 떠나던 날, 달래강 다리까지 따라 나와 버스를 타고 떠나는 나를 배웅하던 어머니의 모습. 아주 조그맣게 엄마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시선을 옮길 수 없었고, 가슴이 먹먹했던 그날의 풍경들이 잊히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전날 동네 친구들과 함께 모여 파티를 벌이던 일. 정월 대보름 즈음이면 논두렁에 나가 불을 피우고 망우리를 돌리며 달에 소원을 빌던 일. 여름밤이면 달래강둑에서 친구들과 기타를 튕기며 유행가를 부르고 강 건너 과수원에 사과서리를 가던 일들….

그때의 추억이 담긴 고향의 장소에 가지 않더라고 순간순간 살면서 그때의 모습이 떠오르고 그립다.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과 함께 했고 큰 사랑을 받았던 행복한 추억이 있어, 힘겨워도 절망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었는지 모른다. 지난 생이 오늘의 삶을 밀어가는 것처럼, 오늘 나의 삶이 누군가와 나 자신의 내일의 삶을 밀어갈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 나와 인연이 닿는 모든 이들에게 성심을 다하며….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조길형 충주시장, 추석 연휴 근무자 격려
1/6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안내 구독신청
광고
광고